“디자인이란 예전에는 없던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며 이는 바로 공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디자인공학’이 전세계 기업의 기준이 되었지만, 헨리 페트로스키 미국 듀크대학 석좌교수가 자신의 첫 책 (To engineer is human·1985)의 머리말에서 디자인과 공학의 근친성을 주장할 때만 해도 그 둘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다. 당시 “세상의 모든 것은 무너진다”며 “실패에 대한 개념을 갖는 것이 공학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는 실패 분석(Failure Analysis) 공학자의 디자인 얘기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89년에 펴낸 두 번째 저서 (The Pencil)은 그를 단숨에 ‘공학디자인’의 창시자로 만들며 그의 성가를 업그레이드했다.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기술적으로 역사의 거듭되는 부침 속에서 하나의 인공물이 발전되는 과정을 추적”한 은, “사실상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우리에게 익숙하며, 아무 생각 없이 손에 들었다가 치워버리기도 하는 평범한 물건”을 통해 공학과 디자인이 ‘샴쌍둥이’였음을 논증한 책이다.
의 공학적 탐구를 좀더 확대시켜 집필한 (The Evolution of Useful Things·백이호 옮김·김영사 펴냄)는, 디자인과 발명에 적용되는 보편적 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예컨대 한 개의 갈퀴를 가진 나이프가 네 갈퀴의 포크로 탄생하기까지, 전장에서 권총을 이용해 먹어야 했던 통조림을 집에서 한 손으로 간편하게 열기까지, 추위를 피해 옷을 여미기 위한 동물의 뼈가 진화해 단추가 되기까지,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이 창조한 500여 가지의 망치가 만들어져 마르크스를 깜짝 놀라게 하기까지. 저자는 문화·정치·기술의 변천에 따라 인공물이 어떻게 진화의 역사를 거듭해왔는지 통찰력 있게 분석했다.
페트로스키의 저작 가운데서 단연 백미로 평가받는 이 책은, ‘이 물건은 왜 이런 모양을 갖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인간이 만든 세계의 모습과 형태를 결정짓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995년 국내에 처음 번역돼 소개된 이후 중·고등학생을 위한 권장도서와 대학 신입생 필독서, 디자인 학도를 위한 도서 등으로 선정됐다가 이번에 재번역과 해제를 더해 재출간됐다. 저자가 말하는 디자인 진화사를 따라가보면서 실패한 디자인의 이유를 톺아보는 일은, ‘새로운 발견’으로 가는 길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책 제목이 된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냐고? 답은 책의 34쪽에 나와 있으니 직접 찾아보심이. “작은 물건에 큰 뜻이 숨어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 작은 문장에 큰 뜻이 숨어 있으니.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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