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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애플은 액정화면을 없애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대폭 낮춘 아이팟 셔플을 출시했다. 디자인은 근사했으나 액정화면이 없으므로 제목을 보며 노래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애플은 이 단점을 멋진 슬로건으로 승화시켰다. “Life is random.” 인생은 무작위다. 아이팟 셔플은 크게 히트했다.
1991년 일본 아오모리현에 태풍이 연달아 몰아쳐서 사과가 90%나 떨어져버렸다. 농민들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누군가가 10%의 사과에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는 이름을 붙이자 10배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다 팔려나갔다. 수험생들에게 일종의 부적이 된 것이다. 마이너스가 오히려 플러스가 된 셈이다.
나는 두 달 전에 첫 책을 냈다. 그런데 발행일이 2013년이 아닌 2012년으로 오기돼 나와버렸다. 서점에 가면 안타깝게도 책이 신간 코너가 아닌 구석 자리에 꽂혀 있는 걸 보곤 했다. 게다가 나는 인문서를 생각하고 썼는데 ‘자기계발→두뇌계발’ 도서로 분류돼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영재교육 책도 아니고 두뇌계발이라니. 하지만 곧 나와 친구들은 이 마이너스 요소들을 플러스로 돌리기 시작했다. 1쇄 분량은 ‘희귀본’이란 이름을 얻었고, 내겐 ‘두뇌계발자’란 직함이 생겼다. 어쨌거나 농담거리가 늘었으니 좋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변환하는 기술, 이것을 아이디어의 ‘변전술’이라 해도 되겠다.
퍼렐 윌리엄스의 을 듣다보면 피처링한 카니에 웨스트가 말을 더듬으며 랩을 하는 부분이 있다. 말을 더듬다니, 래퍼라면 일차적으로 피해야 할 마이너스 요소 아닌가. 그런데 말을 더듬는 절묘한 리듬감이 꽤 즐겁다. 생각해보면 예술가들은 감점 요인, 배제해야 할 것, 즉 온갖 마이너스적인 것들을 예술 안으로 끌어들여 우리의 미감을 끝없이 확장(+)시켜왔다. 우리는 이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찌르는 불협화음, 소닉 유스의 쟁쟁거리는 노이즈를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한때 마이너스적인 거였다.
영화 에는 온갖 노이즈가 많았다. 별점 테러도 있었고 누군가가 표를 대규모로 예매했다가 상영 직전에 환불한다 하더라는 소문도 돌았다. 논란이 일수록 은 더욱 회자됐고 자기장은 더 커져갔다. 마이너스들이 결과적으로는 플러스로 변전된 것이다. 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알았던 한 인간의 절망과 추락(-)이 오버랩된다. 단팥죽에 소금이 들어가면 단맛이 더 강해지듯이, 훗날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더욱 강렬해지고, 우리 안에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득 차오른다(+). 역사는 변전한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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