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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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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 월드에서 불가능은 없다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는 코리안 판타지 장르의 개척자?
등록 2013-12-17 15:02 수정 2020-05-03 04:27

임성한을 보는 것인지, 임성한 드라마를 보는 것인지, 임성한 드라마를 보는 사회를 보는 것인지.

임성한 작가의 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깨알 같은 상황 하나하나, 이상한 심리전이 있고 괴상한 욕망이 있고 헉하는 전개가 있다. 알다시피, 는 ‘대량학살극’으로 기억될 것이다. 등장인물이 줄줄이 죽거나 떠나거나 하다가 개까지 죽었다. 한겨레신문사 앞 호프집 아주머니는 “열두 명 죽었다며?” 했다. 아, 그분도 혀를 차며 물었지만, 를 켜놓고 있었다. 열둘이 맞는 숫자인지 모르겠으나, 몇 명이 드라마에서 죽어나갔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논란과 성토가 그치지 않자 오죽하면 MBC는 일종의 등장인물 사망예고제까지 했겠는가. 하여튼 보다보면, 도대체 이런 대사와 저런 전개를 쓰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저런 드라마가 방송에 나와도 되는 걸까… 하다가, 깜짝 놀란 토끼눈으로 나는 왜 보고 있으며, 그 많은 시청자들은 왜 욕하면서 저 드라마를 보는 것일까, 상념에 빠지는 것이다.

를 보지 않아도 가 어떻게 돼가는지, 대충은 안다. 어떻게? 포털이 있잖아! 시시때때로 검색어 순위에 임성한이나 배우들 이름이 오르면 끝내 한 번은 마우스 버튼을 눌러보게 된다. 아, 이번엔 이분이 가셨군. 어, 요즘엔 이렇게 황당한 전개군. 숱한 낚시성 제목이 명멸했지만, 잊혀지지 않는 따옴표가 있다. “임성한, 암세포 빼고 다 죽여.” 죽다 죽다 남자주인공 황마마(오창석)까지 죽는다는 예고가 나오자, 어느 누리꾼이 쓴 말을 인용한 것이다. 혈액암에 걸린 또 다른 남자주인공 설설희(서하준)의 불멸의 대사, “암세포도 생명인데”, 아시는 분은 인용의 느낌 아신다.

개연성 있는 전개, 상식적 관계,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없다. 멀쩡하던 중년 여인이 소원하던 남자와 데이트를 앞두고 갑자기 혼이 나가 죽어버리고, 성소수자가 108배를 하면 이성애자로 바뀌고, 가장 건강해 보이는 청년이 갑자기 혈액암에 걸리고… 황당하다 황당하다 이건 뭔가 있는 거 아니야 싶다. 모든 것은 문득 일어나고, 모든 변화는 가능하다. 임성한 월드에서 불가능은 없다. 상황을 보면 불쾌하다 나중엔 틀린 이야기도 아니야… 싶은 느낌은 어쩔?

막장이 막판에 오니, 그냥 막장이라 하기엔 뭔가 전복적인 냄새가 나는 결말로 흐른다(아, 누구는 이거야말로 진짜 막장이라 하겠다). 오로라의 전·현 남편들이 오로라와 함께 사는 시추에이션. 전문용어로 폴리가미?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동시에 사귀는(사는) 상황 말이다. 물론 둘 다 애인/남편이 되는 본격 폴리가미는 아닐 것이고, 머잖아 남자들 중 누군가를 현실에서 제거하는 방식으로 윤리적 중화를 하겠지만, 이렇게 흘러간 것만으로도 올레! 역시나 포털 뉴스를 보니, 남자들 사이에 감정선도 있다. 그토록 논란이 많은데 이렇게 밀어가는 작가,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다.

작품 안에서 그렇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현실의 욕망에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자기 조카를 자기 드라마에 줄곧 출연시키다 이번엔 배역까지 확 키웠다, 들켰다. 그래도 잘못했다는 말은 필요치 않다. 논란에 논란이 있는 드라마작가가 방송 연장에 연장을 요구한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사는 ‘노’라고 과감히 말하지 못한다. 시청률이 나오니까, 광고가 붙으니까. 임성한 드라마가 무서운 만큼 무서운 현실이다.

사실 전개보다 무서운 것은 연기다. 배우들이 한결같은 말투와 톤으로 대사를 할 때 가장 무섭다. 완벽한 임성한 복화술. 작가가 배우에게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증거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붓질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선 배우는 되도록 백지여야 한다. 임성한 작품의 주인공이 대개 이전에 주인공을 해본 적이 없는 배우인 이유다. 고정된 이미지가 없어야 한다. 부수적 효과는?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악 척결. 주인공 하는 놈만 주인공 하는 현실에 잠깐 예외가 생긴다.

고로 올해의 문제적 인물이라 하겠다. 세상의 경계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 점잖은 아저씨들이 가장 싫어할 드라마, 임성한 작품에 대해 느끼는 불편은 그냥 욕하고 말기에 좀 복잡한 뒤끝을 남긴다. 물론 이런 쿨한 견해도 있다. “그냥 임성한 코리안 판타지 장르의 개척자라고 생각하고 내버려두면 안 될까?”(@Ramirezi_)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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