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물,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사고들이 우주정신 충만한 공상과학(SF)적 괴담을 양분 삼아 만들어지고 작동한다면 과연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이러한 가설을 생각해본 적조차 없으니 질문을 가지고 있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음에도 수많은 구루들은 현답을 가지고 이 세상에 현현하시어 돈오점수의 찰나로 인도하니 이거야말로 ‘무문현답’이라 할 만하다. 오늘은 이 무문현답의 독립성을 20년째 실행하고 있는 독일 베를린의 해커스페이스 ‘시베이스’(C-BASE)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해커스페이스는 해커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주는 의미 때문에 ‘인터넷 반달리즘의 공간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개인-디지털 제조의 흐름과 함께 협업적인 제작 공간의 대표적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미국에는 해커스페이스가 제조업의 부활이라는 사명과 함께 프랜차이즈화됐다 할 만한 테크숍이 있을 것이요, 이런 테크숍 같은 대형 제작 공간 외에도 각 지역의 상황, 운영자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인 해커스페이스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이러한 현재의 제작 공간으로서 해커스페이스의 원형이 자신들이었다고 주장하는 최초의 해커스페이스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시베이스다.
이들이 구사하는 SF적 괴담(아마 그들에게는 신화일)을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4.5억 년 된 외계 우주정거장의 유물이 베를린 지하에서 발견됐는데 자신들은 이를 탐사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시베이스를 만들었고 이 우주정거장의 재건과 공공적인 이용을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최종 목표? “그 우주정거장을 타고 지구를 떠나는 거야”라고 발그레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기술로 무장한 테키들이라기보다는 ‘SF 모에들?’ 하는 느낌도 순간 들긴 한다. (하기야 모에스러움은 전세계 덕후들의 공통된 성향일 테니 어쩔 것인가.) 어쨌든 이러한 SF적 괴담을 그저 흥미로운 스토리 만들기의 방식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로테크·하이테크를 가로지르며 모든 공간적 설계, 사물, 장치, 프로젝트를 이 괴담에 근거를 두고 좌표를 만들다보니 그 활동의 총합은 흔한 공간적 소비 방식과 시장화에 갇히지 않는 흥미로운 정치적 에너지를 띤다. 분명 힙하지는 않지만 섹시한 이 덕후들! 덕지덕지한 스티커에 장발, 검은 옷을 위아래로 갖춰 입은 이들에게선 1970년대 꽃을 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히피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기술을 통한 다른 구원의 길을 찾았던 히피들의 모습도 얼마간 어른거리지만 이들이 잡스가 될 거 같지는 않다.
이 무문현답의 공간과 덕후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픽션을 사회적인 것이든 과학적인 것이든 여기에서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상상이라고 정의해본다면 픽션의 강력함은 제작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래서 다르게 만들고 다르게 이야기해보자고 오늘도 그러고 있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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