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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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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어 폭탄 막자

홍천군 구만리, 골프장 투쟁하다 부과받은 벌금 마련 위해 콩 공동경작
투쟁 속에서 공동체는 더욱 소중해지네
등록 2013-11-21 14:26 수정 2020-05-03 04:27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주민들이 콩 타작을 하고 있다. 이 콩은 마을 주민들이 벌금과 반대운동 비용으로 충당하기 위해 공동 경작한 것이다.하승수 제공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주민들이 콩 타작을 하고 있다. 이 콩은 마을 주민들이 벌금과 반대운동 비용으로 충당하기 위해 공동 경작한 것이다.하승수 제공

늦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이어서 강원도의 날씨는 쌀쌀하다. 차에서 내리니 맞은편 산을 파헤친 흔적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곳은 강원도 홍천군 서면 동막리다. 막개발 중인 강원도 내 골프장 건설현장 중 한 곳이다. 지난 11월9일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제15차 생명버스 행사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동막리 주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종민씨가 방문자들 앞에서 상황을 설명한다. 동막리에서는 불법으로 묘가 훼손당하고 갖은 위법·편법을 통해 골프장 사업이 추진되고 있단다. 반대운동을 벌인 지 벌써 5~6년이 되었다. 마을 주민 수도 많지 않고, 고령의 노인도 많아 힘들단다. 그러나 마을을 생각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생각하면 골프장 건설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끝까지 막을 수밖에 없다고 결의를 밝힌다.

송전탑으로 돈 벌어 골프장 건설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인 박성율 목사는 “이곳 동막리 골프장 인근에 또 다른 골프장들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가 골프장 단지가 돼간다”고 개탄한다. 그리고 “동막리 골프장 사업자인 세안레져의 모기업인 세안이엔씨는 송전탑 공사를 하는 기업인데, 그렇게 번 돈으로 이곳 골프장을 지으려 한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출발하는 송전탑 공사로 돈을 벌어 강원도의 자연과 마을을 파괴하는 골프장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세안이엔씨가 경남 밀양을 지나가는 신고리~북경남 76만5천V 송전선 공사의 3공구 공사를 맡은 것은 사실이었다. 세안이엔씨의 홈페이지에도 자신들의 공사 실적으로 표시돼 있다.

3공구면 지금 밀양 주민들과 경찰·한국전력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곳 중 하나인 82번 철탑부터 86번 철탑까지가 해당된다. 밀양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송전탑 공사를 하는 업체와 동막리 골프장 건설업체가 동일한 자본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세안레져와 세안이엔씨의 재무제표를 확인해보니, 세안이엔씨가 세안레져에 400억원 가까운 돈을 빌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송전탑 공사로 번 돈으로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다는 얘기가 사실인 셈이다.

또 다른 현장인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로 이동했다. 구만리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박덕흠 의원이 실소유주로 있는 (주)원하레저라는 회사가 추진 중인 골프장이다. 주민들이 9년째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장을 안내하던 반경순 구만리 대책위원장은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다가 본인이 전과 8범이 됐다고 말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주민 30여 명이 전과자가 됐고, 수없이 많은 벌금을 받았단다. 100여 가구가 400년 가까이 집성촌을 이뤄 오순도순 살고 있다가 골프장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가시오갈피 농장’이라며 땅 사들이고는

이 구만리 얘기를 들으면 기가 막힌다. 사업자는 처음에 가시오갈피 농장을 한다면서 땅을 사들였다. 주민들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글을 모르는 주민들에게 돈을 1천만원씩 주면서 동의서를 받았다. 나중에 이를 안 주민들이 반대운동에 나서자, 공사를 밀어붙였다. 2008년에는 공사를 막는 마을 노인들을 용역 120여 명을 동원해 폭행하는 바람에 노인들이 헬기로 병원에 이송되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업자는 주민들을 고소하고 11억98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도 했다.

이렇게 주민들을 핍박하면서 추진된 구만리 골프장은 온갖 불법으로 점철된 사업이었다. 골프장 허가를 받으려고 제출한 산림조사서·사전환경성검토서 등이 엉터리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인 담비·하늘다람쥐·산작약 등이 살고 있는데도, 살지 않는다고 허위 서류를 작성한 것도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강원도에서도 인정돼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직권취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반경순 위원장은 밀양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겪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동안 구만리 주민들이 겪어온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며 얻은 것도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마을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달았단다. 오히려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마을 공동체가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할 정도다.

구만리 주민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이날도 마을 주민들이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밥과 순두부, 정성스런 반찬으로 생명버스 참가자들이 먹을 점심을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점심 식사를 하는 건물 앞에 콩이 쌓여 있다. 이 콩은 마을 주민들이 쏟아지는 벌금과 반대운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경작한 콩이란다. 몇 년 전부터 공동경작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1만여 평에 콩을 심었단다.

최문순 도지사가 골프장 직권취소해야

콧등이 시큰거렸다. 누구는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는데, 주민들은 자신들의 소박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콩을 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치’와 ‘협동’의 본모습이 아닐까?

구만리 주민들은 최문순 도지사가 구만리 골프장을 반드시 직권취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지사가 설치한 특별위원회의 보고서가 11월 말에 나오는데, 이미 많은 불법이 드러난 만큼 도지사가 직권취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강원도 골프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최문순 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했다.

강원도에는 동막리·구만리 외에도 골프장 문제로 고통받아온, 그리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많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강원도청·강릉시청·홍천군청 등지에서 수많은 밤을 노숙농성으로 지새웠다. 모두들 벌금과 소송 등으로 고통받고 있고, 반대운동 때문에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겪고 있다. 주민들이 하루빨리 소박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문순 도지사가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그리고 골프장 관련 규제는 대폭 강화돼야 한다. 이미 골프장은 내리막길 사업이다. 현재 법정관리 중인 골프장이 20여 곳에 달한다.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깡통 골프장도 속출하고 있다. 더 이상의 무분별한 골프장 개발은 많은 마을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할 뿐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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