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노래를 만들어 주기율표를 외웠다. ‘수헬리베∼ 붕타질산∼ 프레나마∼ 알규인황∼ 염아칼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다 문득 부아가 치밀었다. “근데 이런 걸 왜 배우는 거야!” 아직도 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만약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화학을 좀더 좋아했을 것도 같다. (궁리 펴냄)는 국수를 쫄깃하게 하는 방법부터 화장품, 접착제, 맥주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속 화학의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골프채는 왜 모양이 다양하고 표면이 옴푹하게 파여 있을까? 기저귀나 휴지 같은 종이는 과연 자기 무게의 얼마만큼 물을 빨아들일까? 우리의 식생활을 점령한 카페인은 과연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범죄 수사 현장에서 화학 지식은 어떤 활약을 할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이런 물음들 속에서 화학은 더 이상 재미없는 과목이 아니다.
싫어했던 과목에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독자친화적 과학책’은 또 있다. 대중적인 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의 (이규원 옮김, 은행나무 펴냄)은 일본 시사잡지에 연재됐던 독자와의 문답을 엮은 책이다. 바퀴벌레는 멸종되면 좋겠다거나, 자식은 꼭 낳아야 하는지 등 소소하고 일상적인 질문부터 지구온난화 같은 조금은 묵직한 질문까지 독자들의 기발하고 엉뚱한 물음에 저자가 깨알같이 답을 달았다.
저자는 자손을 꼭 낳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바퀴벌레의 유구한 세월에 대해 우리 인간은 겸손함과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사소한 듯 보이는 질문에도 신뢰할 만한 과학 지식을 통해 해답에 접근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경험과 생명 경외, 혹은 인간의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딱딱할 것만 같은 과학에 유연한 사고를 접목해 철학적 사유를 덧붙인 후쿠오카의 글은 ‘좋은 대중 과학서’에 깊이를 더한다.
이 지닌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단순히 지식 혹은 상식의 전달에만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입식으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도달하기까지의 에피소드나 그와 관련된 문제점, 혹은 함께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여기에 더해, 질문을 통해 자신이 과학자로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한다.
일상의 영역을 넘어 우주로 향하는 큰 차원의 과학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게르트 슈나이더의 (이수영 옮김, 돌베개 펴냄)을 읽을 일이다. 이 책은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자연과학의 대답을 공상과학(SF) 여행담으로 풀어낸 책이다. 천문학·물리학·생물학·지구과학·인류학·화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주와 지구, 인류의 역사를 들려준다. 독자는 하루 동안, 외계인이 만든 ‘휴머노이드 엑사포X’를 따라 지구와 생명, 인류의 탄생을 지켜보고 뉴턴과 아인슈타인, 허블과 함께 우주의 시작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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