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연대’를 아는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최병승·천의봉씨)이 울산공장 옆 송전탑에서 296일간 고공농성을 할 때다. 매일 송전탑 옆을 지날 때마다 경적을 두 번씩 울리는 기차들이 있었다. 하늘 벼랑에 매달린 두 사람에게 타전하는 철도노동자들의 속 깊은 응원이었다. 빵빵 연대는 반드시 정해진 궤도를 따라 흘러야 하는 기차의 속성 탓에 가능했다. 기차에게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허락된 다른 길은 없다. 기차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벗어나 ‘탈선’하면 모두가 위험에 빠진다. 자동차나 비행기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다.
민영화가 아닌 것이 아닌철도는 공공의 길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공기업이다. 공기업이 가야 할 최우선의 길은 효율성이 아닌 공공성이다. 코레일이 자동차 회사나 항공사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다. 공공의 길인 철도가 민영화의 길로 탈선할 때 모두가 위험에 빠진다. (박흥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지은이는 18년간 기차를 운전해온 기관사다. 기차에게 ‘정해진 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철도노동자가 민영화라는 탈선을 막고자 쓴 경고다.
철도 민영화는 역대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효율’이란 이름으로 추진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조차 철도노조는 효율 중심의 철도구조 개편에 총파업으로 맞섰다. 정점은 이명박 정부의 수서발 KTX 민영화 시도다. 재벌에 고속철도 운영권을 넘겨주는 민간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회적 합의 없는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새 국토부 장관이 임명되자 경쟁체제 도입을 발표했다. 현 정부는 코레일을 지주회사화하고 수서발 KTX만 운영하는 별도 자회사를 만들려고 한다. 자회사 운영권을 민간에 팔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명시할 방침이어서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런가. 수서발 KTX는 철도의 황금노선이다. 황금노선만 운영하는 독립법인이 생기면 코레일의 재무건전성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수익성이 높은 노선에서 번 돈으로 적자 노선을 보전하는 현재의 철도 공공성 체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은이가 정부 논리는 ‘민영화의 위장잠입’이라고 반박하는 이유다. “국토부의 수서발 KTX 경쟁체제 도입은 민영화 도미노게임의 제일 앞 블록을 무너뜨리겠다는 뜻”이다.
철도 민영화 논란은 공공성이란 가치가 효율과 경쟁의 방해물로 오도되는 시대 흐름을 정확히 반영한다. 공공성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삶을 위해 포기해선 안 되는 가치다. 효율성이란 가면을 쓴 민영화가 구성원의 삶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책은 보여준다. 정부가 경쟁체제 필요성의 근거로 삼는 대구 열차사고도 지은이는 효율이 낳은 참사라고 설명한다. 승무원이 신호를 오인했던 이유와 그 오인을 커버할 시스템에 구멍이 난 배경엔 정부가 강조해온 효율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철도가 이윤을 좇아 탈선하고 민간 기업이 공공의 궤도를 대신할 때 시민의 통제력은 사라지고 만다. 안전사고와 요금 인상 부담은 시민의 몫이 된다. 경쟁체제 도입 뒤 노선별로 20개가 넘은 회사가 난립하며 요금 인상 경쟁으로 질주한 영국의 길이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민영화의 라틴어 어원은 박탈민영화 또는 사유화를 뜻하는 단어 privatization은 ‘박탈’을 뜻하는 라틴어 privatus에서 왔다고 한다. 지은이는 강조한다. “민영화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을 소수의 전유물로 만드는 것이며,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와 이익을 박탈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철도노조는 지난 6월27일 ‘정부의 민영화 강행 때 파업 돌입’안을 찬성 89.7%로 가결했다. 철도노조 역사상 가장 높은 찬성률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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