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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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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배우 그룹의 탄생

<방과후 복불복>의 연기하는 아이돌 그룹 ‘서프라이즈’… 가수 아닌
연기 그룹의 등장은 아이돌 팬덤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룰 바뀌는 신호탄
등록 2013-10-18 15:01 수정 2020-05-03 04:27

‘서프라이즈’는 5명의 젊은, 또는 어린 남자들이 모인 그룹이다. 서강준, 공명, 강태오, 유일, 이태환 같은 멤버들의 이름부터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모바일 드라마 으로 데뷔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작품에 출연하는 사이 처럼 함께 연기하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그룹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들의 소속사 ‘판타지오’가 밝힌 대로, 그들은 그룹이되 가수가 아닌 연기 그룹이다.

만화적 연출, 색깔 있는 캐릭터

연기자를 왜 굳이 그룹으로 묶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은 tvN 등 제목만으로도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 정정화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에서 전작들보다 더 과장된 만화적인 연출을 활용하고, 그 과정에서 서프라이즈가 연기하는 다섯 캐릭터는 확실한 색깔을 얻는다. 모두 잘생긴 것은 기본이고, 누군가는 까칠하고 누군가는 따뜻하며 누군가는 개구쟁이다. 이 5명의 꽃미남들이 무작위로 뽑은 쪽지에 쓰인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각자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의 설정과 비주얼은 기억에 확실히 남는다. 당연히 이들과 여주인공 사이의 멜로도 등장한다. 엑소는 에서 교복을 입고 춤췄고, B.A.P는 에서 전사 설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황당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이런 콘셉트를 통해 멤버들마다 캐릭터를 갖고, 관객에게 판타지 같은 존재로 다가선다.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면서도 만화적 캐릭터를 갖고 팬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는 것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열광적인 팬덤을 만들어내는 고유한 방식 중 하나다.

정정화 감독이 밝힌 대로, 이 학교를 배경으로 꽃미남들이 등장하는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고 모바일을 통해 유통된 것은 판타지오가 이 작품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아이돌 그룹의 기본 팬덤을 형성할 수 있는 10대들이 가장 재밌어하는 설정과 익숙한 환경. 실제로 서프라이즈는 이미 아이돌 팬덤의 또 다른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빠르게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하는 아이돌 그룹, 또는 스크린에 나오는 동시에 소녀팬들의 비명을 듣고 싶어 하는 그룹의 탄생은 지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룰이 바뀌는 순간을 보여준다.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10대와 20대 초·중반까지의 연예인에게 연기냐 노래냐는 구분은 점점 더 무의미한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돌이냐 아니냐는 정체성이다. 인기 아이돌이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캐스팅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퍼진 아이돌의 열광적인 팬덤은 그들을 중심에 놓은 작품의 제작을 가능케 하고, 작품 제작 전후에 일어나는 팬덤의 반응은 그 자체로 이슈가 된다. 그룹 빅뱅의 탑이 출연하는 영화 은 탑이 캐스팅 물망에 오르는 순간부터 인터넷상에서 끊임없이 이름이 오르내렸다. 일정 수 이상의 대중이 끊임없이 시선을 집중시키도록 만드는 힘. SM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한 가요계의 아이돌 그룹 제작 방식은 지금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아이돌 그룹 어울리는 드라마 제작
기획사 판타지오는 소 속 배우 5명을 그룹으 로 묶어 모바일 드라 마  을 제작한다. 이 드라 마를 통해 배우들에게 아이돌 그룹 가수처럼 캐릭터를 부여한다. 판타지오 제공

기획사 판타지오는 소 속 배우 5명을 그룹으 로 묶어 모바일 드라 마 을 제작한다. 이 드라 마를 통해 배우들에게 아이돌 그룹 가수처럼 캐릭터를 부여한다. 판타지오 제공

이민호가 스타덤에 오른 계기는 4명의 꽃미남을 ‘F4’라는 그룹으로 묶고, 드라마 내내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을 보여준 KBS 였다. 지난해부터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김수현은 배우가 아이돌 시장과 어떻게 만나는지 보여준 모범답안이었다. SBS 등으로 기대주가 됐던 그는 KBS 에서 가수를 꿈꾸는 소년을 연기했다. 탄탄한 연기력은 기본이었고, 아이돌 가수처럼 노래를 불렀으며, 순박한 청년이 화려한 스타가 되는 메이크오버도 보여줬다. 김수현은 MBC 을 통해 더 큰 팬덤을 갖게 됐고, 영화 에 출연할 때쯤에는 관객석에서 소녀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는 에서 남한 침투라는 지령을 받은 살벌한 간첩이었지만, 같이 사는 할머니에게 대책 없이 얻어맞는 순박한 소년이기도 했다. 영화에는 김수현이 상반신을 드러내고 운동하는 장면이 있었고, 상대역인 이현우가 그에게 존경과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감정을 품는 설정도 있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에서는 여진구가 어린 킬러 역할도 한다. 과거라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부터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10대는 이런 작품에서 아이돌 그룹의 무대에서 보던 판타지를 발견하고, 20~30대 관객은 H.O.T 시절부터 즐기던 재미를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 작품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700만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하고, 가 ‘김윤석-여진구’라는 예상 외의 조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이런 설정을 즐겁게 소비하는 관객층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서프라이즈 같은 연기하는 아이돌 그룹의 등장은 매니지먼트사가 이런 시장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 중 하나다. SM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 그룹에 어울리는 노래와 안무, 의상을 구현해 그들에게 캐릭터를 만들어준다면, 판타지오는 아이돌 그룹에 어울리는 드라마를 제작한다. 기존의 소속 배우들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회사가 단지 배우를 트레이닝하고 좋은 작품에 출연시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배우의 캐릭터를 잡아주고, 어울리는 작품을 제작하는 것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제작 시스템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도 JYP엔터테인먼트와 키이스트의 합작품이었다. 아이돌 기획의 노하우를 가진 회사와 함께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필요한 노하우를 쌓고 있는 것이다. 아예 그 노하우를 사오는 경우도 있다. 배우 매니지먼트로 유명한 사이더스는 최근 비스트, 포미닛, 에이핑크, 비투비 등 아이돌 그룹을 제작한 큐브엔터테인먼트와 합병했다. 사이더스는 이에 앞서 인기 아이돌인 박재범과 계약을 맺고 음반을 제작해왔다. 배우를 매니지먼트하거나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노하우가 있던 회사들이 아이돌 그룹의 제작 노하우를 쌓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SM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자회사 격인 레이블 SM C&C를 통해 드라마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왜 아이돌 연기자인지 답은 아직…

이제 신인배우도 아이 돌 가수 방식으로 데 뷔하고, 아이돌 주연 배우 기용은 영화의 흥행을 위한 선택이 됐다. 영화 의 김수현, 의 여진구, 의 탑(왼쪽부터 시계 방향). 더 램프 제공

이제 신인배우도 아이 돌 가수 방식으로 데 뷔하고, 아이돌 주연 배우 기용은 영화의 흥행을 위한 선택이 됐다. 영화 의 김수현, 의 여진구, 의 탑(왼쪽부터 시계 방향). 더 램프 제공

배우를 만들던 회사는 아이돌 제작 노하우를 배우고, 아이돌 제작 노하우를 가진 회사는 아이돌에게 배우의 직업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앞서 있는 것은 아이돌 제작 노하우를 가진 쪽이다.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그룹 f(x)의 멤버 크리스탈은 SBS 에 출연한다. 은 과 등을 쓴 김은숙 작가가 쓰고, 이민호가 출연하는 기대작이다. 아이돌 가수의 제작 방식이 드라마와 영화에도 적용되고, 인기 아이돌 가수들은 화제가 될 만한 영화와 드라마의 중요한 배역에 출연한다. 만약 올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엑소가 단체로 출연한다고 하면 그들을 거부할 제작사나 방송사가 있을까. 과거에는 배우가 인기 트렌디 드라마에 출연해서 성공하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갈수록 이런 신드롬적 인기를 얻는 배우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미니시리즈는 시청률이 10% 중반만 넘어도 성공한 것이 됐고, 과거 나 처럼 남자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일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대신 인기 아이돌 가수가 열광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확실한 수익 구조를 가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과거 아이돌 가수들이 경쟁적으로 연기에 도전했던 것처럼, 이제는 신인 배우들이 아이돌 가수의 방식으로 활동을 준비한다. 아니면 아예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연기로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한다. 서프라이즈 같은 그룹은 그런 흐름의 교차점에서 생겨난 또 다른 유형의 아이돌 그룹이다. 물론 서프라이즈와 같은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신인 배우들을 아이돌 그룹처럼 만들려면 그들에게 어울리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콘텐츠를 최대한 많은 대중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이돌 가수의 제작사들은 노래와 안무를 만들어 기존 음악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면 된다. 반면 같은 드라마는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신인들이 주연인 12부작 드라마를 방영해줄 방송사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왜 아이돌 가수가 아닌 아이돌 연기자인지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신인이 무대가 아닌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이돌이 됐을 때의 이점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음악/드라마 경계 허무는 새로운 룰

실제 과거 ‘다섯 개의 별’로 불리던 연기자 그룹도 있었지만 이들은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다만 그때는 연기자가 그룹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진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이돌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에 있는 지금은 아이돌 제작 방식이 이 산업 전체에 퍼져 있다. 또한 노골적일 만큼 특정 팬층을 노리는 의 전략은 ‘다섯 개의 별’ 시절보다 선명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흐름이 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이 변화에 적응하거나 이런 양상을 굳히기 위한 작업에 나선 셈이다. 아이돌 스타를 만들어내는 회사들을 중심으로 인수·합병이 이어지는 지금, 배우와 가수, 음악과 드라마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새로운 산업의 룰이 만들어지고 있다.

강명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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