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상황에 어느 정도 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1976년에 입학해서 1989년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력이 대략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것이다. 그런 내 동생도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이 그리운가보다. 충북 괴산 근처 산골에 땅뙈기를 좀 마련하더니, 조카 이야기를 빌리자면 부부간 대화는 물론이고 사보는 책이 모두 귀농 관련이란다. 늦바람 무서운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 바람에 동생이 이 칼럼의 독자가 되면서 뜸하던 형제간 대화도 숨통을 찾았다. 내친김에 동생에게도 일러줄 겸 내가 실제 도움을 받았던 책 몇 권을 소개해보자.
돌이켜보니 나의 반쪽 시골생활도 머리가 몸보다 먼저였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군대 3년 빼고는 삶의 대부분을 배움터 근처에서 어슬렁댔으니 궁금하면 무엇이든 먼저 읽고 이해한 다음 실전에 적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방식은 공리공담에 매몰돼 쪼잔하고 답답한 인간 창출의 컨베이어벨트가 될 수도 있지만 나름 장점도 많다. 이른바 ‘카더라’ 통신에 쉽게 넘어가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그중 으뜸일 것이다. 올림밭이라든가 퇴비화 변기 등 관행농법의 현실적 대안은 물론이고 아이 교육, 그리고 내 삶의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 등을 나름대로 실천한 것은 모두 이런 머리 굴림을 몸짓으로 연결한 산물이라고 자부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기 쉽지만, 먹물이 좀 들거나 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시골살이의 정신적 고전으로 칭하는 책을 몇 권 꼽으라면 아마도 십중팔구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나 스콧 니어링의 (원제 The Good Life)이 그에 속할 것이다. 약 한 세기 차를 두고 미국 동북부 외딴 숲 속 생활을 적어나간 공통점이 있고 같은 사상적(?) 계보에 속한다 하겠지만 둘은 많이 달랐다. 읽어보면, 소로는 지극히 철학적이고 니어링은 매우 행동지향적이다. 은 이슬방울같이 맑고 투명하고 깊은 밤 보름달처럼 젖어들어 미국 수필문학의 최고봉 중 하나라고 칭송되지만 문장이 길고 난해해, 막내의 표현을 빌리면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 ‘쩐다’. 반면 니어링의 책은 이념적으로는 전투적이기까지 하지만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방안으로 가득하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온실 짓기는 기실 그의 발상을 무단 도용한 측면이 많음을 이미 고백했다. 생각의 덩이들을 몸의 움직임과 땀으로 구체화한 것이기에 니어링의 책은 울림이 크고 그만큼 따라할 것이 많으면서도 실제로는 몸이 고돼 따라하기 힘들다.
산더미처럼 많아 그게 다 그것 같긴 하나 그래도 내가 도움받은 서양 책 중 하나를 고르라면 ‘몬티 돈’이라는 영국 정원사가 쓴 (The Complete Gardener)를 추천하고 싶다. 번역서가 없고 서양 채소와 식물을 소개한 거라 우리네 사정과 다를 수 있는 게 흠이지만, 정원에 ‘미쳐버린’ 나라인 영국에서 제법 이 분야의 현대적 고전에 들 정도니 보고 배울 것이 많다. 유기농 중심의 실용성에 더해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책이니 전원생활 초심자가 따라하고플 게다.
일본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은 우리네 전원생활 소개서 또한 서점가를 빼곡히 장식하는데 장단점이 뚜렷하다. 더러 읽다보면 소개하는 동식물이며 농법이 친숙한 것이 많아 적용 가능성에서 우월하지만, 가끔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해 조상의 누백 년 지혜가 새마을운동식으로 교조화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조금 과장하자면 들판의 풀 중에 약이 아닌 것이 없고 조상의 지혜 중에 감탄스럽지 않은 것이 없을 지경이다. 제대로 다 읽어보지도 않고 우리네 경험을 폄훼할까 송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직까지는 진심이다. 그런 중에도 빛나는 것이 있으니 안식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장영란의 과 내가 추천하는 김성원의 이다. 그나저나 어려웠던 한 시대를 편하게 살아 항상 마음의 빚이 있었는데 이런 글로나마 동생에게 빚을 던다면 그 또한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