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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해결책이 있다

집과 더불어 필요한 공간 첫 번째… 강아지를 낳으면 “개집 어디서 사나?” 대신 “개집을 어떻게 만들지?” 질문하게 만든 작업실
등록 2013-07-03 16:22 수정 2020-05-03 04:27
유학 시절 ‘개라지 세일’을 유람하며 사모은 목공도구 컬렉션이 갖춰진 작업실. 강명구 제공

유학 시절 ‘개라지 세일’을 유람하며 사모은 목공도구 컬렉션이 갖춰진 작업실. 강명구 제공

귀농을 택하든, 아니면 일주일에 5일은 도시에, 이틀 주말은 농촌이라는 뜻의 ‘오도이촌’(五都二村) 별장형 전원주택을 원하든, 하여간 탈도시의 대열에 합류하려는 사람들이 땅을 구한 뒤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집이다. 당연하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밖의 일이 험하고 힘들면 집은 정갈하고 안온해야 한다. 그래야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살아보시라. 집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못지않게 중요한 공간들의 존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 부류의 공간으로 나는 창고를 겸한 작업실을 1순위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다음호에 이어서 소개할 온실과 토굴 또한 그 못지않게 매력적인 공간이다. 어쩌면 시골생활의 진수는 집보다는 이런 부차적 공간들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과 잔잔한 기쁨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도 시간이 가면 안락함은 주지만 즐거움은 줄어든다. 익숙해지면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이 피하기 힘든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하나 집에 비해 부차적 공간들은 안락함은 뒤질지 몰라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나의 유학 시절인 1980년대 초만 해도 우리네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지 못했다. 아직도 차고 옷이고 중고 물품으로 절약하는 행동거지는 그 시절 동네 주말 벼룩시장 격인 ‘개라지 세일’(Garage Sale)을 유람하며 얻은 오래된 습관이다. 차고를 뜻하는 ‘개라지’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웬만한 집안일은 제 손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온갖 도구가 즐비했다. 아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일본제 끌을 시작으로 푼돈이 모일 때마다 나의 개라지 세일 중고 목공도구 컬렉션이 시작됐고 그 종착역이 지금 내가 사는 곳의 작업실이다.

“거금 들여 기계를 사서 만든 것이 고작 발 받침대 몇 개”라고 식구들 지청구도 없진 않지만 실제로 작업실의 효능은 다대하다. 축구경기의 골이 ‘누구의 발끝’에서 시작되듯, 내 시골 일의 대부분은 작업실에서 시작된다. 할 일이 생기면 우선 작업실로 가서 연장들을 바라보며 일머리를 구상한다. 바라보기만 해줘도 아이에게 힘이 되는 엄마의 존재처럼 작업실에 가면 어쩐지 무언가 해결책이 나올 것만 같다. 그러다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수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필로 엉성하게 스케치한 작업도면은 실제로 장미와 클레마티스 넝쿨이 기댄 뒷마당의 그늘막, 수돗가 처마 지붕, 그리고 텃밭의 식물 지지대가 되었다. 더 나아가 부러진 도끼 자루 수선이며, 전북 남원 부흥의 대장간에서 제작한 무뎌진 부엌칼 날 벼리기까지 모든 것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강아지를 낳으면 “개집은 어디서 사나?”라고 묻는 대신 “개집을 어떻게 만들지?”라고 묻게 되었다. ‘이마트’나 인터넷 쇼핑 대신 나 자신이 내 삶의 중심으로 다가간 것이다.

하나 산이 깊으면 골 또한 깊은 법. 어쩌면 쓸지 모른다고 온갖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하고 쟁여놓다보면 정리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버릴 것이 생기고 버릴라치면 쓸모 있을 것 같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짊어진 짐의 종류 또한 제목만 적어도 한쪽은 넘길 것이다. 뽑아놓은 나사못, 와인병 코르크 마개, 식빵봉지 묶은 금빛 철사 줄, 못 쓰게 된 철사 옷걸이…, 아직 읽지 못하고 서가에 꽂혀 있는 내 책들처럼 말이다.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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