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독재자가 급사했다. 봄이 오는 듯했다. 거기까지였다. ‘꽃잎’은 핏빛 서리를 맞고 고사했다. 봄이 망가지고 다시 겨울이었다. 또 다른 ‘겨울공화국’의 시작 이었다. 겨울을 몰고 온 ‘동장군’, 그는 전두환이었다.
저자는 전두환을 ‘역사 인식은 천박했지만,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대담하게 행동할 줄 아는 마키아벨리스트였다’고 평가한다. 1980년 8월22일 열린 전두환의 대장 전역식 사진. 닷새 뒤 그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한겨레 자료
야당의 승리가 당연해 보였던 2012년의 총선과 대선 이 보수의 완승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한 정치부 기 자는 1979년을 떠올렸다. 그 생각은 다음 질문을 낳았 다. “10·26 이후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오르던 1979년,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전두환은 어떻게 집권할 수 있었을까?” 고나무의 (북 콤마 펴냄)은 이에 대한 답이다. 기자인 저자 는 군사독재 시절에 활동한 주요 정치인과 관료의 회고 록,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 기밀문서, 5공화국 관련 인사 들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토대로 전두환과 그의 시대를 분 석했다. 특히 출생과 성장 등 개인사부터 ‘멘토’ 박정희와 의 인연, 쿠데타 성공 요인, 통치 스타일까지 인간 전두 환의 다면성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사실 젊은 세대에게 전두환은 독재자라기보다 차라리 개그의 대상이다. 기성세대에겐 ‘분석할 가치가 있는 통 치자가 아니라 그저 악마’다. 한국 사회는 분명 그의 시대 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를 이렇게 망각 의 건너편으로 보내줘도 되는 것일까. 1980년 5월을 피로 물들인 자들에게 수여된 금빛 훈장은 아직 회수되지 않 았고, 광주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상이 겁 나지 않는 그는 오늘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전두환은 부과된 추징금 2205억여원 가운데 1672억 여원을 미납했다. 추징 시효는 2013년 10월이다. 그의 숨 겨진 재산을 찾자는 의 보도 이후 시민들의 제 보가 잇따랐고, 검찰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추징금 환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책은 잊힌 전두환을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세운 기자가 탐사한 한 ‘마키아벨리스트 의 초상’인 셈이다.
“냉혹하게 권력과 돈을 추구한 하나회의 핵심이자 지 지자의 충성을 물질적으로 보상해야 함을 잘 아는 실용 주의적 조직가였다. 역사 인식은 천박했지만, 권력의 진 공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대담하게 행동할 줄 아는 남자 였다. 잔정이 많은 조폭형 리더였지만 동시에 광주 시민 을 학살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냉혈한이었다.”
전두환을 이렇게 평가한 저자는 결론적으로 “야당이 무능할 때 한 사회는 그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리더를 가 진다”고 썼다. 그렇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찍은 시민들을 비난할 일이 아니라, 그들을 찍게 만든 진보개혁 진영의 무능을 반성할 때 변화는 비롯될 것이다.
오늘 다시 전두환을 일깨운 미덕
전두환이 천문학적인 뒷돈을 챙긴 ‘클렙토크라시(도 둑정치)의 화신’이기 전에 쿠데타를 위해 시민을 도륙한 ‘학살자’라고 믿는 난,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이 책의 차 분한 어조가 어색했지만 학계의 연구가 박정희 시대에 머물고 대중은 전두환을 잊고 사는 오늘, 그를 다시 일 깨운 미덕은 적지 않다.
“그 자신 좌익사범 출신인 처지에 비판자들을 북의 간 첩으로 몰아 교수대로 보낸 자가 박정희라는 것을 우리 가 잊을 때, 피 묻은 손으로 시민들의 자유를 옥죈 뒤 지 금까지도 피 묻은 돈을 꽁꽁 간직하고 있는 자가 전두환 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을 때, 역사는 또 다른 도살자의 손을 통해 반드시 우리에게 보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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