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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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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그것은 소유의 재발견

정리 컨설턴트에게 배우는 새봄맞이 정리의 기술… 분류와 버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필요한 것만 사는 게 정리의 시작
등록 2013-03-30 22:49 수정 2020-05-03 04:27

어쨌거나 한 계절이 우물쭈물 물러나는 중이다. 새봄을 맞아 묵은 짐을 정리하길 결심한 지 아마도 여러 날, 드디어 칼을 뽑아들고 정리에 나섰는데 눈앞이 깜깜하다. 무엇부터 버려야 하지? 정리를 하기에 앞서 자꾸만 머뭇거리는 이유는 버리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테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들, 이를테면 추억이라든지 물건의 가격이라든지 언젠가의 쓰임을 이유로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므로 정리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정리를 포기한 채 짊어진 짐의 무게를 더해가며 산다. 그러나 사실 정리에 앞서 우리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정리=버리기’의 공식이라고 한다. 정리 컨설턴트 이현주씨의 말이다. 그의 도움을 얻어 정리의 기술을 배워보았다.

정리는 모으고 판단하고 버리고 수납하는 과정이다. 정리 전문가들은 집안 정리에서 가장 어질러지기 쉽고 정돈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공간이 옷장이라고 말했다.

정리는 모으고 판단하고 버리고 수납하는 과정이다. 정리 전문가들은 집안 정리에서 가장 어질러지기 쉽고 정돈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공간이 옷장이라고 말했다.

정리의 본질은 분류와 판단이다

“저는 오늘 이사를 해서 정리할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정리 컨설팅 의뢰를 한 고객의 집에 함께 가서 취재를 했으면 하는데요.” 3월18일 월요일, 새 계절을 맞아 공간 정리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하고 이현주 컨설턴트에게 현장 섭외를 부탁하는 전화를 걸었다. “이사 전후는 정리가 가장 필요한 시점일 텐데요.” 이현주 컨설턴트의 말이다. 전에 살던 집에서 100ℓ짜리 쓰레기봉투를 두 개 가득 채우고 떠나왔다. 군짐을 처리했는데 무슨 정리가 더 필요하단 말일까. 다음날 다시 통화하기로 하고 퇴근 뒤 이사업체가 막 떠난 집에 도착했다. 가구는 반듯하게 자리를 잡고, 살림살이는 행과 열을 맞춰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문을 열자마자 기대는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짐들은 옮겨온 집에 적응하지 못한 채 길을 헤매고 있었다.

하룻밤이면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저녁에 시작한 정리는 한밤중을 넘겨 새벽이 될 때까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 절망적인 건 정리를 하면 할수록 집안 꼴은 더욱 쓰레기장에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군살처럼 따라붙어 온 자잘한 짐을 버리면 집안이 모양새를 찾을 수 있을까. 이사한 집에 들어온 첫날, 100ℓ짜리 쓰레기봉지를 한 번 더 채워 내놨다. 그러나 버리고 또 버려도 정리정돈의 길은 멀기만 했다. 한 방을 깨끗하게 치우면 다른 방이 자투리 짐들로 채워졌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쏟아져나온 물건들은 자리만 바꿔가며 집안을 떠돌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이현주 컨설턴트에게 SOS를 보냈다.

스스로 정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두 부류다. 잘 버리거나, 잘 수납하거나. 그러나 이현주 컨설턴트가 말하는 정리의 본질은 분류와 판단이다. “무조건 버리는 게 답은 아니에요. 제대로 판단하기 전에는 버리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정리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거든요. 그렇다고 수납을 잘하는 것도 정리를 잘한다는 말과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돼요. 겉보기에 깔끔한 것과 정리는 다르거든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류예요.”

분류의 기준은 간단하다. 서로 연관성 있는 물건끼리 모으는 것. 예컨대 부엌이라면 조리도구만 모아 첫 번째 서랍에 넣어두거나, 사기 그릇은 사기 그릇끼리 두는 것, 옷장이라면 티셔츠는 티셔츠대로, 외투는 외투대로 모으라는 것이다. 그 말에 자신감이 생겨 밤새 정리한 책장을 보여주고 평가를 부탁했다. “어떤 기준으로 책을 꽂은 거죠?” “한국소설, 외국소설, 인문·사회과학책, 에세이 등으로 구분하고 가장 안쪽에는 자주 안 보는 책을 꽂았습니다.” “잘하셨는데 자주 안 보는 책을 분류한 것이 문제네요.” 이현주 컨설턴트는 여러 가정과 사무실을 컨설팅하면서 사람들이 자기만의 분류를 해서 물건을 흩뜨리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직관적인 분류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잘 안 읽는 책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지금 필요 없는 책이 언젠가 필요해 다시 찾을 때 무슨 기준으로 책이 있는 위치를 더듬어야 할까요? 본인의 기준으로 책장을 정리해뒀다면 함께 사는 사람은 어떤 기준으로 자기가 필요한 책을 찾아야 할까요?”

정리를 하기 전에 물건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던 옷방. 컨설턴트의 조언을 들으며 정리를 마치니 숨어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정리를 하기 전에 물건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던 옷방. 컨설턴트의 조언을 들으며 정리를 마치니 숨어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진짜 버릴 건 불편해서 손 안 가는 옷

정리를 하면서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는 자주 쓰는 물건과 아닌 것을 구분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자주 쓰는 물건을 눈에 가장 잘 띄고 손 가기 편한 곳에 모아놓게 되는데, 그곳에 계속 물건을 쌓다보면 가진 물건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다보니 물건을 찾을 때마다 시간이 한참 걸리거나, 눈에 띄지 않으니 같은 물건을 두 번 사게 되거나, 가족이 뭔가를 찾기 위해 그 공간을 자주 쓰는 누군가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주 컨설턴트는 살면서 가장 어질러지는 공간은 옷장, 주방, 아이방 순서라고 했다. 이사 직후부터 창고가 될 조짐이 보인 옷방을 함께 정리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분류다. 큰 분류 기준은 네 것과 내 것을 나누는 것이다. “첫 번째 생각해야 할 것이 ‘니 거 내 거’예요. 함께 사는 공간이라도 자기만의 물건을 모아두는 것은 중요해요.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남의 물건이 섞여 있으면 정리하려 들지 않거든요.” 옷장을 열고 거실에 남자 옷과 여자 옷을 구분해 펼쳤다. 다음에 할 일은 옷걸이에 걸 옷과 개어서 서랍에 넣을 옷을 구분하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옷을 구분해 정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한겨울 외투만 아니면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옷을 입는 편이잖아요. 외투, 얇은 옷, 바지, 치마와 같은 간단한 기준으로 나누세요.” 단순화한 구획에 따라 옷을 나눠 모았다. 모으는 중에 몇 년씩 안 입던 옷들이 나왔다. 이사 전 옷장을 뒤져 안 입는 옷은 눈에 띄는 대로 버리고 왔는데도, 헝클어져 있던 옷 사이에서 버릴 옷들이 나왔다. 컨설팅 실습차 동행한 강예주씨는 버림의 기준을 ‘불편함’으로 정하라고 말했다. “유행이 다시 돌아올 것 같아 머뭇거려지는 옷은 따로 모아 저장해두면 돼요. 진짜 버려야 할 것은 불편해서 손이 가지 않는 옷이에요.” 취향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비슷한 옷들도 여러 벌이다. 강예주씨가 덧붙였다.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옷장의 공통점은 같은 옷이 여러 벌 나오는 거예요. 이미 가진 물건인데 없다고 생각하고 또 사는 거죠.”

옷걸이도 뽑아서 같은 것끼리 나눴다. 세탁소 옷걸이, 옷을 사면서 받은 옷걸이, 나무 옷걸이 따위를 구분했다. 같은 분류에 속한 옷들은 같은 모양의 옷걸이에 걸었다. 같은 것끼리 모여 있으면 통일감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공간을 덜 차지한다. 얇아서 뒤죽박죽 섞어놓았던 민소매 티셔츠들이 손바닥만 하게 접혀 행과 열을 맞춰 줄을 섰다. 옷장 한쪽에 미역처럼 널려 있던 목도리와 스카프들도 서랍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그동안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옷걸이가 정리를 끝내고 나니 한 무더기 옷장 밖으로 퇴출됐다.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옷 사이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바지들을 모아놓고 보니 서랍 한 칸이다. 옷장이 모자라 마련했던 봉으로 된 기다란 옷걸이 중 하나가 방에서 빠져나왔다.

비싼 임대료 내며 물건에 공간 내줘

정리는 다른 말로 ‘소유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강예주씨는 정리를 배우면서 소비를 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쇼핑을 덜하게 됐어요. 내가 이런 물건도 가졌구나, 확인하고 나니 굳이 비슷한 물건을 살 필요가 없어진 거죠.” 이현주 컨설턴트는 정리는 현명한 소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사는 것부터가 정리예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 사야 합니다. 싸다고,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물건을 저장해두는 습관을 버려야 해요. 2009년에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가정의 정리 일을 도운 적이 있는데 1999년이 유통기한인 음식물이 나온 적도 있어요. 우리는 왜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물건에 공간을 내주는 거죠? 싸게 샀다고 좋아하지만 사실 훨씬 많은 비용을 물건을 위한 임대료로 쓰고 있는 셈이에요. 그러다 집이 좁다고 느껴지면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더 넓은 집을 찾게 되는 거죠. 이사 비용이며 체력, 정신적 고단함, 모두 물건을 저장하기 위해 쓰고 있는 거예요.”

이현주 컨설턴트는 정리를 하기 위해 수납도구를 사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라고 조언했다. “홈쇼핑에서 파는 이불·겨울옷 압축팩이라든지, 수납 상자를 사는 것을 권하지 않아요. 부피를 줄이거나 숨겨두기 위해 수납을 한 다음 그것을 다시 꺼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설령 꺼낸다고 해도 그다음에 그것을 다시 어떻게 수납해야 하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거든요. 정리를 잘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물건을 다양하게 써볼 수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에요. 잊힌 물건이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옷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바지를 모아 서랍 한 칸에 정리했다. 이현주 정리 컨설턴트는 “제대로 분류를 마치면 정리 뒤 물건을 찾는 데 소비하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옷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바지를 모아 서랍 한 칸에 정리했다. 이현주 정리 컨설턴트는 “제대로 분류를 마치면 정리 뒤 물건을 찾는 데 소비하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물리적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 만들어낸 혼란스러운 공간에 압도당한 채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을 쓴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는 책에 “자신의 삶과 공간의 혼란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현주 컨설턴트는 정리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어 삶의 활력을 찾은 이들을 여럿 보았다고도 했다. 이른바 ‘정리 세러피’다. 정리가 힘들어 사회생활이 고달팠다고 고백하는 사람, 어질러진 집에서 우울증을 겪고 가족 간의 단절을 겪는 이들이 실제로 있었단다. 물리적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얘기다.

정리 전문가들은 지갑·가방 같은 물건과 책상 위, 옷장 같은 작은 공간에서부터 조금씩 확장해가며 정리해보길 제안했다. 짊어진 많은 것들을 버림으로써 어쩌면 누군가의 고백처럼 고단한 삶의 해법을 찾을 수도, 황폐해진 지구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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