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무리 손전화를 넣어도 연락이 닿지 않는 오 ‘사장님’은 지난 10여 년간 나와 같이 한 달이면 4∼5일을 지금 사는 이곳을 개척(?)한 일동무였다. 평생을 농사로 시작해 삽질과 막일로 늙은 60대 후반의 일당 잡부, 즉 ‘노가다’ 출신인 그를 나는 항상 ‘사장님’으로 존칭했다. 내가 고추 모종을 심어놓고 물을 주어도 시들시들해서 걱정하면 이렇게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식물이 흙냄새 맡으면 지가 다 알아서 큽니다.” 내가 몇 번의 곡괭이질과 삽질로 허덕대면 아주 능숙한 삽질 솜씨로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으면서 내게 이렇게 한 수 지도했다. “삽질은 고봉 밥술 같으면 안 되고 회 뜨듯 해야 힘이 덜 들고 오래 할 수 있어요.”
시골 비슷한 수도권 주변으로 이사 와서 산 지 벌써 14년째, 집 주변을 정리하며 나도 꽤나 일머리가 늘었다. 뒷마당 앞에 선 아들 병곤이와 강아지 들이. 강명구 제공
초등학교 이래 40년 가까운 서울 한복판 생활을 접고 시골 비슷한 수도권 주변으로 이사 와서 산 지 벌써 14년째로 접어든다. 개척이라면 개척이랄까, 아니면 생활환경 기반 조성이라면 조성이랄까, 그도 아니면 노년의 준비라면 준비랄까, 하여간 집 주변을 정리하며 나도 꽤나 일머리가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성장(?)은 알고 보면 다 오 사장님 유의 고수들에 힘입은 바 크다. 그래서 에 칼럼 연재를 부탁받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문구는 유홍준의 6권 부제로 유명해진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였다.
곳곳에 산재한 이런 분들을 생각하면 감히 나의 십수 년 얼치기 준(準)시골생활을 글로 대중매체에 옮기는 것은 만용이랄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기댈 언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연재를 부추긴 동력은 내 거처를 방문한 지인들의 무식 수준이었다. 대부분 서울 아파트 거주자이면서 내 삶의 방식을 동경하는 이들은 ‘쌀나무’라는 표현을 쓰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아주 익숙한 삶의 일상에 무궁한 호기심과 관심을 보였다. 대개가 이런 것들이었다.
“이 많은 풀을 어떻게 관리하나? 저 무거운 돌들을 어디서 구해 어떻게 저 담을 쌓았나? 나무 전지하는 기술은 어디서 배웠느냐? 어떤 연장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가?” 등등 끝도 없다. 내 답은 거의 일정했다.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정 모르면 책 찾아보거나 인터넷 검색하세요.” 그런데 정작 책을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 대개 고담준론의 멋들어진 철학적 사유는 많은데 너무나 빤한 일이라 그런지 이들이 원하는 답은 잘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런 정도라면 ‘내가 어떻게 했는지 한 소리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사장님이 내게 훈수했듯 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일이라면 고수인 오 사장님이 “내가 해도 혼자서 이 댁처럼 해놓기 힘들지요”라며 칭찬하거나, 고개 너머 팔순이 다 되신 고모님이 “조카네 고추는 약 안 쳐도 어떻게 잘 달리나?”라고 의아해하시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더 가져도 좋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격주로 연재할 짧은 글에서 고담준론의 사유는 살짝 고명처럼 얹고, 정성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삶의 실용적 경험을 소개할 요량이다. 처음에는 다소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꿰어보면 체계적인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삶의 지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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