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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개방적인 보수

MB 측근에서 방송 진행자까지 자칭 ‘쿨보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하이브리드한’ 삶 다룬 사람 매거진 <나·들> 2월호
등록 2013-02-05 21:26 수정 2020-05-03 04:27

이명박 정권 5년의 본질적 성격을 상징하는 일들이 임기 끝물을 타고 외설스럽게 불거지고 있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지명권을 행사한 헌법재판소장 후보는 법관의 지위를 찌질한 권력질에 동원해온 인물이었다. 대통령의 마지막 특별사면권은 자신의 멘토와 친구를 위한 ‘셀프 사면’에 쓰였다. 공화국 정권의 최소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이 사익집단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민망하다. 이런 난장 같은 상황에서 지난 5년에 대해 언론과 허심탄회하게 인터뷰할 정권 참여 인사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권의 균형추 맞추려고 애썼다”

나·들 제 4호 표지

나·들 제 4호 표지

딱 한 사람, 예외적 인물이 있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다. 정권 초기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그는 한때 대통령의 실세 측근으로 통했다. 그러나 ‘고소영’ ‘강부자’와는 너무나 다른, 오히려 정반대의 이미지로 비치는 인물이다. 그는 요즘 미래기획위원장보다는 tvN 의 진행자로 대중적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같은 방송의 <snl>에 출연해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정권 풍자 코너였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이브리드’와 ‘쿨보수’로 규정한다.
사람 매거진 2월호가 진정성 검증을 벼르며 곽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톡톡 튀는 말솜씨로 사회적 안전망 구축, 정당명부제 확대, 청년 비정규직의 정치 세력화 등을 역설한다. 주장만 보면 한국의 어느 경제학자보다 ‘급진적’이다. ‘자본주의 5.0’이라는 개념도 설파한다. 시장이 정부의 역할도 일정하게 나눠 가짐으로써, 이윤율 추구만을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의 ‘가치 전환’이 일어나는 단계란다. 그의 개념은 흥미롭게도 세계적 좌파 철학자들의 ‘자본주의 내에서 자생하는 코뮌주의’ 개념과 닿아 있다.
하지만 실천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적어도, 이명박 정권은 ‘자본주의 4.0’(자본가의 공익 기여 단계)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퇴행적 체제가 아니였나. 곽 위원장은 자신이 이번 정권에서 힘겹게 관철한 ‘심야 과외교습 금지’와 일관되게 주창해온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같은 정책을 예로 들며 정권의 균형추를 맞추려 애썼다고 강조한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개혁파가 노선 투쟁에서 밀리고 강경파가 득세하게 된 정권 내부의 사정도 털어놓는다. 그렇더라도 그가 이번 정권에 참여하게 된 합리적 이유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그의 ‘가치 하이브리드’론에서 실마리가 보인다. 그는 사안에 따라 같은 사람조차 진보와 보수의 태도를 오가는 시대에 획일적인 패러다임으로는 현실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한 이유도 현실에 밀착한 의제를 설정하지 못한 채 이념 구도에 매달린 데서 찾는다. 그의 평가대로라면 정치 지형의 변화에 보수가 더 빨리 적응한 셈이다. 또한 민주당이 선거 패배의 원인을 ‘50대 보수화’로 돌리는 것은 또 다른 실패를 예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독학해서 격투기 시합 나가기도
곽 위원장이 직접 쓴 개인사도 흥미롭다. 그는 모바일 기기를 세 종류나 쓰고 있는 얼리어답터다. 한국에 격투기 열풍이 불었을 때는 독학을 해서 실제 시합에 나가기도 했다. 결국 3전3패의 아픈 성적을 남기고 격투기계를 떠난다. 은퇴는 물론 대학교수가 격투기에 데뷔했던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그는 얼리어답터이자 격투기 도전자였던 자신의 삶을 두고 ‘변화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의 성패와 무관하게, 적어도 그의 삶은 우리 사회의 현재에 미래적 영감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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