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사우나를 좋아한다. 평일이면 더 좋다. 평일 밤 사우나는 조용하다. 탕 안에도 혼자 앉아 있을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뜨끈한 습식 사우나에 들어앉으면 사방이 조용하니, 평화다. 어깨에 힘을 빼고 모래시계 쏟아져내리듯 주저앉으면 딱딱하게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를 떨쳐버리는 기분이다. 처녀 적에도, 노키드 유부녀 시절에도 평일 밤 사우나는 사랑이었다.
그런 평화의 시간을 깨는 적은 ‘아줌마 부대’다. 적게는 두세 명부터 많게는 대여섯 명까지 벌거벗고 둘러앉아 커피나 식혜통을 옆에 두고 사우나가 떠나가라 수다를 떠는 이들 말이다. 뜨거운 사우나를 어찌나 잘 참는지 좀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법도 없다. 너무 더우면 사우나 바닥에 찬물을 끼얹고 문을 열어놓는 신공까지 발휘하니 시끄럽고 뜨거우면 내가 자리를 떠야 한다. 그런 아줌마 부대를 만나면 그날 사우나비가 아까울 정도로 짜증이 났었다.
아아 그러니까 나는, 2013년 1월16일 수요일 밤 11시에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몰랐던 거다. 그날 밤, 나는 ○○마트 뒤편 24시간 찜질방의 습식 사우나 안에 동네 아줌마 3명과 둘러앉아 목욕탕이 떠나가라 수다를 떨었다. 솔이 엄마와 유나 엄마 옆에는 커피와 식혜통도 있었다. 현소 엄마 뒤쪽에 누워 있던 한 여성이 우리가 와르르 하고 웃자 화르륵 신경질이 난 눈으로 우리를 째려봤다. 눈이 마주쳤지만 피했다. 그의 소중한 시간을 우리가 방해하는 게 분명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애 낳고 처음 목욕탕 온 거예요.” 2012년 아이를 낳은 애엄마 4명이 의기투합해서 이날 밤, 잠자는 아기를 남편에게 맡긴 뒤 사우나에 집합했다. 목욕탕 주인에게 안 해도 될 설명까지 하며 우리는 너무도 신이 났다. 동네에서 이제 막 얼굴을 익힌 사이였던 우리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만난지 3번 만에 벗다니, 이건 신랑보다도 빠르네!” 우리는 목욕탕이 떠나가라 웃었다.
아기를 재우고도 그 곁을 떠날 수 없어 늘 답답한 밤을 보내던 애엄마들이다. 젖 먹이고 안고 어르느라 어깨·손목·허리 안 아픈 데가 없는데도 애가 울까봐 샤워 한 번 맘 편히 하지 못했던 이들이다. 그런 우리가 땀이 뜨끈하게 나는 사우나에 둘러앉았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남편 흉도 보고 서로 몸매 비교도 하고 이 사우나 식혜가 맛없다고 흉도 보려니 목소리는 커져만 간다.
그날 목욕탕 안에 계시던, 혼자 와서 조용히 몸 좀 풀고 가려 하셨던 분들께 죄송하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후 우리는 또 다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사우나로 달려갈,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늦은 밤 사우나는 이제 내게 전혀 다른 의미다. 아아 겪어봐야 그제야 상대를 이해하는 이 모자란 인간이여! 그동안 눈 흘겼던 아줌마부대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아줌마 부대 파이팅, 기다려라 사우나야!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 이 글은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babytree.hani.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