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돌잔치는 어떻게 할 거야?” 놀랐다. 이 질문을 처음 들은 건 아 직 임신 중이었을 때다.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뭐? 돌잔치! 요즘 엄마들 사이에 ‘핫’한 돌잔치 플레이스는 임신 중에 예약해놔 도 원하는 날 할 수 없을지 모른다나. 이런 이야기를 한두 명에게 들 은 것이 아니었으니, 나중에는 이 질문을 받고 놀랐던 내 자신이 촌 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걸·꼭·해·야·하·나·요.” 결혼부터 시작해서 출산·양육에 이 르기까지 이런 질문이 목구멍 아래까지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참으 로 많다. 돌잔치 질문에 가슴속 깊숙이 쑤셔 넣어둔 불만들이 뭉게 뭉게 일어났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큰 예식장 빌려 맛없는 밥 비싸게 주고 대접해가며 결혼식을 올려야 하고, 양가가 눈치 싸움을 해가며 예단이며 혼수며 이바지 음식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뿐이랴. 근본을 알 수 없는 ‘웨딩촬영’이란 놈도 있어 괜히 화장 진하게 하고 드레스를 몇 번이고 갈아입으며 카메라 앞에서 낯선 사진사가 시키 는 대로 포즈를 잡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결혼 의식(성 혼 선언을 떠올려보라)은 이런 허례허식이 덕지덕지 붙어 수백 배 비대해진 몸집으로 신랑·신부를 주눅 들게 한다.
우리 부부는 과감히 웨딩촬영을 생략했다. “그래봤자 가격은 비슷 하다”며 결혼 패키지 상품에서 촬영을 빼주지 않으려는 웨딩플래너 를 달래가며 성취해낸 일이었다. 대신 우리는 평소 입던 커플룩 등 을 챙겨 들고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예물도 혼수도 생략했다. 살면서 사자,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았다.
‘아기 시장’은 ‘결혼 시장’보다 한층 영악했다. “찍어보시고 결정하세 요.” 아기를 낳기도 전에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통해 만삭 사진부 터 아기 50일 사진까지 무료로 찍어주겠다는 제안이 빗발친다. 무료 라니 한번 찍어보았다. 만삭 사진은 못 봐줄 뚱보여서 별로였지만 50 일 사진은 귀여웠다. ‘오호, 이래서들 아기 백일사진을 찍어주나 보군’ 생각하기 무섭게 사진관에서 100만원을 훌쩍 넘는 ‘성장앨범’ 패키지 상품을 권한다. 웨딩촬영보다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해냈다. 대 신 50일 사진 찍은 원본 파일을 받아오는 데 10만원을 내야 했다.(왜!)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아기한테 해주는 건데 기왕이면…”이라는 주 변 시선이다. “한 번뿐인 아기 돌잔치인데 기왕이면 좋은 데서 많은 사람들 축하받으며 하는 게 낫지 않아?” “나중에 아이가 원망할라, 옆집 애를 봐!” 다양한 말들이 부모를 압박한다.
눈 딱 감고 돌잔치만 지나면 나아지려나? 한데 절망이다.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 생일파티를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열기로 했는데 그 아이 엄마가 “학급 아이들과 엄마들을 초대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실내 놀이시설에 가서 놀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아이 생일파티가 너무 화려한 듯해 난색을 표했더니 돌아온 말은 “우리 아이들 일인데 신경 써야죠”란다. 아, 돌잔치가 끝이 아니로구나. 앞날이 걱정이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