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무서워 “아기한테 기왕이면…”

등록 2012-12-07 23:57 수정 2020-05-03 04:27
아기의 백일 날, 떡과 과일을 사서 집에서 상을 차렸다. 한겨레 임지선 기자

아기의 백일 날, 떡과 과일을 사서 집에서 상을 차렸다. 한겨레 임지선 기자

“애 돌잔치는 어떻게 할 거야?” 놀랐다. 이 질문을 처음 들은 건 아 직 임신 중이었을 때다.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뭐? 돌잔치! 요즘 엄마들 사이에 ‘핫’한 돌잔치 플레이스는 임신 중에 예약해놔 도 원하는 날 할 수 없을지 모른다나. 이런 이야기를 한두 명에게 들 은 것이 아니었으니, 나중에는 이 질문을 받고 놀랐던 내 자신이 촌 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걸·꼭·해·야·하·나·요.” 결혼부터 시작해서 출산·양육에 이 르기까지 이런 질문이 목구멍 아래까지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참으 로 많다. 돌잔치 질문에 가슴속 깊숙이 쑤셔 넣어둔 불만들이 뭉게 뭉게 일어났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큰 예식장 빌려 맛없는 밥 비싸게 주고 대접해가며 결혼식을 올려야 하고, 양가가 눈치 싸움을 해가며 예단이며 혼수며 이바지 음식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뿐이랴. 근본을 알 수 없는 ‘웨딩촬영’이란 놈도 있어 괜히 화장 진하게 하고 드레스를 몇 번이고 갈아입으며 카메라 앞에서 낯선 사진사가 시키 는 대로 포즈를 잡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결혼 의식(성 혼 선언을 떠올려보라)은 이런 허례허식이 덕지덕지 붙어 수백 배 비대해진 몸집으로 신랑·신부를 주눅 들게 한다.

우리 부부는 과감히 웨딩촬영을 생략했다. “그래봤자 가격은 비슷 하다”며 결혼 패키지 상품에서 촬영을 빼주지 않으려는 웨딩플래너 를 달래가며 성취해낸 일이었다. 대신 우리는 평소 입던 커플룩 등 을 챙겨 들고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예물도 혼수도 생략했다. 살면서 사자,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았다.

‘아기 시장’은 ‘결혼 시장’보다 한층 영악했다. “찍어보시고 결정하세 요.” 아기를 낳기도 전에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통해 만삭 사진부 터 아기 50일 사진까지 무료로 찍어주겠다는 제안이 빗발친다. 무료 라니 한번 찍어보았다. 만삭 사진은 못 봐줄 뚱보여서 별로였지만 50 일 사진은 귀여웠다. ‘오호, 이래서들 아기 백일사진을 찍어주나 보군’ 생각하기 무섭게 사진관에서 100만원을 훌쩍 넘는 ‘성장앨범’ 패키지 상품을 권한다. 웨딩촬영보다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해냈다. 대 신 50일 사진 찍은 원본 파일을 받아오는 데 10만원을 내야 했다.(왜!)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아기한테 해주는 건데 기왕이면…”이라는 주 변 시선이다. “한 번뿐인 아기 돌잔치인데 기왕이면 좋은 데서 많은 사람들 축하받으며 하는 게 낫지 않아?” “나중에 아이가 원망할라, 옆집 애를 봐!” 다양한 말들이 부모를 압박한다.

눈 딱 감고 돌잔치만 지나면 나아지려나? 한데 절망이다.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 생일파티를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열기로 했는데 그 아이 엄마가 “학급 아이들과 엄마들을 초대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실내 놀이시설에 가서 놀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아이 생일파티가 너무 화려한 듯해 난색을 표했더니 돌아온 말은 “우리 아이들 일인데 신경 써야죠”란다. 아, 돌잔치가 끝이 아니로구나. 앞날이 걱정이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