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제도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발끝을 대고 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로운 밤, 쓸쓸한 밤, 피곤한 밤, 무서운 밤, 길고 긴 밤에 자고 있는 남편의 몸 어딘가에 슬며시 내 발끝을 갖다댈 때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전하고 따뜻한 느낌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이 난다. 남자와의 잠자리와 남편과의 잠자리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결혼 생활 6년 동안 이 안온함이 깨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곤란이가 태어났을 때도 예상하지 못했다. 막 태어나 집에 온 곤란이는 그 작은 몸을 침대 옆 요람에 눕혔다. 우리는 여전히 침대에서 발가락을 대고 잤고, 밤잠 잘 자는 순둥이 곤란이는 요람에서 조용히 잠을 잤다.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은 곤란이 생후 2개월 즈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3.9kg으로 우량아의 기운을 슬쩍 풍기던 아기는 2개월이 지나가면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금세 5kg을 넘어 6kg, 7kg으로 몸집을 불려갔다. 게다가 잘 때 팔을 쩍 벌려 대(大)자로 잔다. 더 이상 앙증맞은 요람 따위는 아기의 잠자리가 될 수 없었다. 욕심내서 눕혔더니 아기가 지금 뭐하는 짓이냐며 짜증을 낸다. 그렇다면 내 아기의 잘 곳은 어디인가?
우리만 침대에서 자고 아기를 바닥에 요 깔아 재우자니 뭔가 아기에게만 먼지를 먹이는 것 같아 미안했다. 게다가 밤중에 한두 번쯤 수유를 해야 하고, 혹시 아기가 깨서 울지는 않는지 체크하려면 아기를 손 닿는 곳에 두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침대에서 빠져줘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젖이 나오지 않는 사람, 남편이다.
그렇게 남편은 침대에서 쫓겨났다. 침대 밑에 요를 깔 자리도 어정쩡해 남편은 아예 다른 방에 가서 자게 됐다. 이래저래 불편하게 잠을 자게 된 남편이 안쓰러워 아예 내가 마루에 요를 깔고 아기와 잠을 청해보기도 했다. 그랬더니만 침대 생활에 익숙해진 내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그렇다면! 산후조리 필요 없는 남편이 고생하는 게 낫다.
하여 기약 없는 두 이불 생활이 시작됐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리가 없다. 이미 10kg을 넘어버린 아기를 자그마한 아기 침대에 재울 수도 없고, 이제 뒤집기를 시작한 아기를 홀로 어린이 침대에 재울 수도 없고, 다 같이 요에 자기엔 몸이 불편하고, 침대를 킹 사이즈로 바꾸어도 셋이 자기엔 무리다.
딴 방을 쓰게 된 남편은 어느새 하숙생 모드로 돌입했다. 내가 아기를 젖 물려 재울 때면 쓱 방으로 들어가 뭔가 게임을 하다가 밤이 깊으면 쓰러져 잔다. 나는 이 생활이 너무나 무료하게 느껴져 ‘부부 아기 잠자리’ ‘6개월 아기 잠잘 때 어떻게’ 등의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에 열을 올렸지만 어느 곳에서도 무릎을 팍 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예전에 ‘각방 쓰는 무늬만 부부’ 사연을 취재한 적이 있다. “아기 출산 뒤 슬슬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던 부부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제야 이해된다.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오늘 밤도 답을 찾지 못한 채 품에 아이를 안고 발가락을 허공에 꼼지락거리며 나는 잔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이 글은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