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같은 집안에 앉아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풍경이다. 폭격이라도 맞은 듯 거실에는 뽀로로 인형들이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다. 유아용 블록, 딸랑이와 치발기, 아기띠와 손수건, 각종 장난감까지 잡다한 것들이 구석구석 널브러져 있다. 부엌에는 아기가 먹고 마신 잔해와 이유식기 등이 쌓여 ...2013-03-09 04:11
머리 뜯기고 즐겁기만 했는데어쩌지. 새해 벽두부터 우리 부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아기를 재워놓은 깊은 밤이었다. 어쩌지. 나는 한숨을 쉬었고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검색질을 시작했다. 그날 낮 아기는 동네 또래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 니까 생후 10~12개월의 친구들...2013-02-19 22:29
“만난 지 3번 만에 벗다니…”늦은 밤 사우나를 좋아한다. 평일이면 더 좋다. 평일 밤 사우나는 조용하다. 탕 안에도 혼자 앉아 있을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뜨끈한 습식 사우나에 들어앉으면 사방이 조용하니, 평화다. 어깨에 힘을 빼고 모래시계 쏟아져내리듯 주저앉으면 딱딱하게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를...2013-02-01 15:19
젖소는 복직에 졌소이제 나는 젖소다. 열한 달 동안 젖먹이랑 뒹굴며 동물적인 삶을 살 다 보니 그리 되었다. 이제 아기가 어떤 자세로 젖을 물어도, 조금 당기거나 뽑거나 장난을 쳐도 난 끄떡하지 않는다. 무념무상, 허공 을 응시하는 젖소의 경지다. 아니, 그 이상이다. 아기에게 젖 먹이...2013-01-19 00:25
첩보 성공 혹은 깊은 미안함 갈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평소의 나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좋 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술이 있는 곳! 송년회에 왜 안 간단 말인가? 약속이 겹치지 않는 이상, 송년회를 마다해본 역사가 없다. 그런데 2012년 송년회는 완전히 달랐다. 내게서 절대로 ...2013-01-04 22:03
곤란이의 첫 5년호르몬 탓인가 눈물이 났다. 일하다 말고 말이다. 만삭, 산전후휴가 돌입 직전의 일이다. 당시 신문 오피니언면의 ‘논쟁’이란 코너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주의 논쟁 주제는 ‘나는 왜 이 후보를 지지하는가’였다. 그러니까 벌써 까마득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박원순과 나경원...2012-12-18 18:58
무서워 “아기한테 기왕이면…”“애 돌잔치는 어떻게 할 거야?” 놀랐다. 이 질문을 처음 들은 건 아 직 임신 중이었을 때다.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뭐? 돌잔치! 요즘 엄마들 사이에 ‘핫’한 돌잔치 플레이스는 임신 중에 예약해놔 도 원하는 날 할 수 없을지 모른다나. 이런 이야기를 한두 명에...2012-12-07 23:57
하늘은 높고 나는 바람맞는다원래는 집 앞을 산책할 계획이었다. 아기띠에 아기를 넣어 앞으로 안 고 날이 추우니 싸개를 두른 채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전철역까지 걸 어갔을 즈음 아기가 잠들었다. 집에서는 한참을 보채더니 산책하자고 그랬구나, 이제 난 뭘 할까 하는데 때마침 나처럼 홀로 애를 보던...2012-11-23 20:07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도 감동마지막 캠핑은 임신 6개월 때였다. 그러니까 1년 전 가을, 10월이었다. 그때 우린 당분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오롯이 둘이서 텐트를 펼쳐놓고 앉아 함께 먹을 밥을 지었다. 임신 뒤 고기 굽는 냄새를 싫어하게 된 아내를 위해 남편은 소고기무국을 끓이고 무생채를 ...2012-11-09 22:52
지금 뭐해, 완벽한 친정을 놔두고“내가 지금 남편 옆에서 뭐하는 거야. 완벽한 친정을 놔두고!” 출산 뒤 서울에서 헌신적인 친정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다가 남편의 직장 문제로 지방에 내려간 한 선배가 푸념을 했다. 남편은 일하느라 바빴다.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선배는 하루 종일 홀로 아이를 돌보곤 했...2012-10-24 17:35
설사하는 아기랑 고향 가는 길꾸르륵 쭈르륵 뿌직. 귀를 의심했다. 내일이면 추석 명절을 보내러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데 아기의 배와 엉덩이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난 것이다. 새벽 3시의 일이었다. 남편이 아기의 겨드랑이를 들어올리고 내가 바지와 기저귀를 내렸다. 오옷, 콧물 같은 곱똥에 피까지 보...2012-10-09 17:56
진심으로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넌 엄마 없니? 엄마 없어?”쇠창살 너머를 바라보며 도준 엄마(김혜자)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자기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알면서도 저기 저 아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저기 저 아이는 아들과 같은 지적장애인. 누명을 썼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그에게는 엄마조차 ...2012-09-18 21:10
곤란이가 잘 곳은 어디인가결혼이란 제도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발끝을 대고 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로운 밤, 쓸쓸한 밤, 피곤한 밤, 무서운 밤, 길고 긴 밤에 자고 있는 남편의 몸 어딘가에 슬며시 내 발끝을 갖다댈 때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2012-09-04 17:29
장염에 울고 죄책감에 더 울고 똥은 7월2일에 시작됐다. 이제 와서 보니 그건 똥이 아니라 설사였지만, 아무튼 그때는 설사인 줄 몰랐다. 3~4일에 한 번씩 똥을 싸는 곤란이가 그날은 하루에 6번이나 똥폭탄을 날리기에 ‘아,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며 재밌어했다. 모유만 먹는 아기는 하루에 15번 ...2012-08-22 14:31
도시에서 아기를 키운다는 것아침 6시, 인기척에 살짝 눈을 떠보니 아기가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다가 방긋 웃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야 할 시간이란 뜻이다. 물 먹은 솜 같은 몸을 움직여 아기를 안아올린다. 아이와 잠시 놀아주던 남편이 출근을 해버리고 나면 집 안에는 아기와 나, 둘뿐이...2012-08-08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