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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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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나는 바람맞는다

등록 2012-11-23 20:07 수정 2020-05-03 04:27
곤란이를 안고, 만원 버스에서. 한겨레 임지선 기자

곤란이를 안고, 만원 버스에서. 한겨레 임지선 기자

원래는 집 앞을 산책할 계획이었다. 아기띠에 아기를 넣어 앞으로 안 고 날이 추우니 싸개를 두른 채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전철역까지 걸 어갔을 즈음 아기가 잠들었다. 집에서는 한참을 보채더니 산책하자고 그랬구나, 이제 난 뭘 할까 하는데 때마침 나처럼 홀로 애를 보던 동 생한테서 연락이 와 ‘벙개’를 하게 됐다. 벼락같이 택시를 타고 김포공 항에 새로 들어섰다는 한 쇼핑몰로 향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하늘 도 높고 단풍도 예뻤다.

여기서 잠깐. 아기를 낳은 뒤 대개는 직접 운전을 해서 이동한다. 임 신을 하고서 한동안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그런데 배가 제 법 불러와도 흔들리는 만원버스에서 누구도 자리 양보를 해주지 않 았다. 다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임신부 가 바로 옆에 배를 내밀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듯 했다. 공연히 임산부 우대 표시가 붙어 있는 분홍색 의자 시트만 노 려보고 다녔다. 7개월까지 버티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넘어선 무배려 에 치여 대중교통을 포기했다. 만삭에도, 아기 백일 때도 차, 내 차를 이용했다. 다행히 아기는 카시트에 잘 앉아 있어주었지만 내가 운전 하는 동안 돌봐줄 이 없이 아기를 두는 것은 늘 불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날 택시를 탔다. 그리고 사달이 났다. 쇼핑몰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 뒤 동생과 헤어졌다. 다시 택시를 타야 하는데 어디로 간 다? ‘안내’를 찾아갔다. 안내 직원은 내게 “공항의 국제선 쪽 택시 승 강장을 이용하라”고 했다. 오잉? 공항 택시 승강장이라면 혹시, 승객 의 목적지가 가까우면 생트집을 잡거나 아예 승차 거부를 해버리는 그곳? 다시 물었다. 쇼핑몰 쪽에는 택시를 탈 곳이 없느냐고. 없단다. 국제선이 최상이며 승차 거부는 없다고 했다.

국제선 쪽 출구에 가자 칼바람이 불었다. 길을 건너니 수십 대의 택시 가 즐비하다. 내가 있는 위치는 그 긴 줄의 끝쪽. 맨 앞까지 한참을 걸 었다. 중간중간 택시 기사들에게 “여기서 타면 ○○동 가느냐”고 물 었다. 앞에 가서 이야기하란다. 맨 앞에 가니 터줏대감인 듯한 아저씨 둘과 ‘교통질서’ 표시가 된 옷을 입은 청년이 어디를 갈 거냐고 묻는 다. “○○동”이라니 인상을 구기고 맨 바깥쪽에 세워진 택시로 가더니 “여기 ○○동 좀 데려다주고 와” 한다. 택시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애도 안고 있는데 좀 가지 그래?” “싫다고~.” 난 아기 를 꽉 끌어안고 길 한가운데 서서 바보처럼 덜덜 떨었다.

그렇게 난 승차 거부를 당했다. “콜택시를 부르든지 하쇼.” 따질 새도 없이 바람을 피해 건물 안으로 뛰던 내 등 뒤로 한 아저씨가 툭 말했 다. 허탈한 마음에 동생과 통화를 하니 그도 하소연이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 아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는데 사람들이 밀 치고 서로 먼저 타려 해 너무도 힘들었다고 한다. 내릴 때 역시 아무 도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지 않아 자신이 맨 마지막에 아기를 부둥 켜안고 닫히는 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내렸단다. 그래, 모든 것은 내 가 차를 안 갖고 외출한 것 때문이겠지. 아이를 업고 집 밖에 나온 엄 마들 잘못이겠지!

임지선 한겨레 기자

* 이 글은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babytree.hani.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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