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임지선 기자
갈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평소의 나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좋 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술이 있는 곳! 송년회에 왜 안 간단 말인가? 약속이 겹치지 않는 이상, 송년회를 마다해본 역사가 없다. 그런데 2012년 송년회는 완전히 달랐다. 내게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 으려 안간힘을 쓰는, 시야에서 엄마만 사라지면 세상 끝난 듯 울어 대는, 그야말로 껌딱지 같은 아기가 생겼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송년회 날짜를 표시하다가 결심했다. 그래, 웬만하면 가자. 그날 아기 상태 봐서, 내 상황 봐서 가자. 사람들 얼굴도 보고 왁자지 껄 수다도 떨고 기회가 되면 맥주 거품도 좀 핥자. 그리하여 나는 송 년회에 참가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게 되었다.
첫 번째 송년회는 첩보작전 저리 가라였다. 나는 “언제 오냐”는 그들 의 문자에 “답은 곤란이만 알고 있다”고 답했다. 친정에 가서 아기를 재우고 송년회에 갈 요량이었는데 눈치를 챈 건지 아기는 좀처럼 잠 들지 않았다. 나갈 준비를 다 하고 앉아 자장가를 부르고 젖을 먹여 밤 9시쯤 아기를 재웠다. 언제나 나의 편, 친정 아버지가 운전사를 자처했다. 폭설이 내린 밤, 아버지는 놀러가고 싶어 안달이 난 딸을 시내의 한 술집 앞에 내려주었다. “금방 나올 거면 술집 앞에서 기다 릴까?” 묻는 아버지에게 “금방 안 나올래요”라고 답한 뒤 술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정이 가까워서 친정에 복귀했다. 그사이 천사 아기 는 한 번도 깨지 않았다고 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기뻐하며 얼른 옷 갈아입고 아기 옆에 누우니 아기가 딱 깨서 젖을 찾았다. 첩보작전 대성공이었다.
첫 번째 성공의 기쁨에 도취돼 두 번째 송년회에도 참석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마침 송년회가 있는 날 남편이 자 기 직장 동료 가족과 캠핑을 가자고 한다. 장소는 서울 난지캠핑장, 오호, 송년회가 있는 홍대 앞과 가까운 장소다. 남편에게 아기띠를 둘러주고 난 차를 몰아 송년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술집으로 향 했다. 그런데! 도착하기도 전에 남편의 전화. “그냥 했다”고는 하는데 전화 너머 아기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그런데도 2시간 가까이 놀았 다. 다시 남편의 전화. “이제 와주면 안 돼?” 정신없이 차를 몰아 캠 핑장으로 돌아가니 엄마를 발견한 아기가 대성통곡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아기와 남편을 모두 대동하고 참석한 송년회도 있다. 아기를 보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술집에 수유실이 있을 리 만 무해 아기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젖을 물자 마자 잠들어버리는 아기를 보며 “미안해, 엄마가 미쳤지”를 몇 번 했 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쩌냐. 나 홀로 조용한 집 안에서 아기만 바 라보고 있기에 12월은 너무도 뜨겁고 아쉽고 아름다운 것을. 앞으로 곤란이와 함께 살며 맞이하게 될 송년회는 언제나 갈까 말까 고민으 로 시작해 작전 성공의 쾌감이나 깊은 미안함으로 끝을 맺곤 하겠 지만 두려워하진 않으련다. 왠지 곤란이와 나,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곤란아! 엄마랑 송년회 진하게 함 하자!
*이 글은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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