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인기척에 살짝 눈을 떠보니 아기가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다가 방긋 웃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야 할 시간이란 뜻이다. 물 먹은 솜 같은 몸을 움직여 아기를 안아올린다. 아이와 잠시 놀아주던 남편이 출근을 해버리고 나면 집 안에는 아기와 나, 둘뿐이다.
적막한 공기가 부담스러워 텔레비전이든 라디오든 켠다. 아기의 시선을 잠시라도 잡아두는 데는 텔레비전이 더 낫다. 아기를 낳으면 텔레비전을 없애야지 다짐했는데 이제는 텔레비전 없인 하루가 버겁다. 아기에게 치발기를 주고 모빌을 보여주다 시계를 보면 10분, 거울을 보여주며 까꿍까꿍을 하다 시계를 봐도 이제 겨우 10분이 지날 뿐이다.
아기가 좀처럼 낮잠을 안 자는 날에는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다. 밥 먹을 짬도 잘 나지 않고 샤워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 요즘 같은 폭염에는 아기를 안고 있노라면 땀이 뻘뻘 난다. 날이 선선하면 유모차 끌고 동네라도 한 바퀴 돌 텐데. 집 안을 뱅뱅 돌며 아기띠도 해보고 힙시트에 앉혀도 보고 쏘서라는 놀이기구에 넣어주기도 한다. 아기를 안고 창밖을 보며, 아기야 오늘은 비가 오는구나, 이제 해가 뜨는구나, 아 이제 해가 지는구나, 한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아기는 너무나도 귀엽지만 그 아기를 전적으로 혼자 돌봐야 하는 시간은 외롭고 벅차고 답답하다. 왜 아기 엄마 혹은 할머니들이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데리고 나와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나 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 안에서 모두들 아기를 홀로 돌보느라 지치고 외로웠던 것이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남편과 둘이서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런 ‘나홀로 육아’를 일주일 하고 나니 우울함이 끝없이 밀려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안 도와주는 친정 부모님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결국 얼마 뒤 산후도우미를 2주 동안 불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돈 써가며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일, 나는 도로 ‘나홀로 육아’의 길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미 언니의 아기 둘을 키워주고 있는 친정 부모님, 나보다 두 달 뒤 아기를 낳은 여동생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지방에 계시는 시부모님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누이가 나보다 이틀 뒤에 아기를, 그것도 둘째를 낳았으니 할 말 다 했다.
그러니 하루 종일 덕지덕지 쌓인 우울을 풀어낼 대상은 밤늦게 퇴근한 남편뿐이다. 남편 역시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 늘 육아에 지쳐 있는 아내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을 터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잠이 들고 나면 이미 남편도 다른 방에서 잠이 들기 일쑤다. 그러고 나면?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인기척에 눈을 뜬다. 아기가 말똥말똥 바라본다. 무한 반복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동네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공동체가 깨진 도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삼촌들, 고모들의 손을 오가며 육아 부담을 분담하는 구조도 핵가족 시대에는 어림없다. 산후우울이 출산 뒤 호르몬 변화로 인한 당연한 증상인 듯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외로운 도시에서 아기를 홀로 키우기가 얼마나 버거운지를 나타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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