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보다 이른 나이에 더 어린 시절 돌아보는 이말삼초 세대
그들이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대중문화로 1990년대를 기억하는 이유
7080세대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0년이다. ‘세시봉’ 멤버들이 열심일 때가 1960년대 중반 이후였고, 7080 붐이 90년대 들어 불기 시작했으니 대충 그 정도가 걸렸다. 그 세대가 돌아서서 되씹어본 시기는 그들의 20대였다. 열심히 살다 삶이 허무해 그 황금 같던 ‘아, 스무 살’ 시간으로 돌아갔고, 기억이 상품으로 변한 첫 번째 대중문화 사건을 만들어냈다.
놀랍게도 7080세대는 세시봉이나 대학가요제 스타를 정치적 사건과 연결짓는 데 능했다. 그래서 그들 입에선 노는 것도 정치적이었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장발, 기타, 청바지로 놀았지만 그건 놀이이기도 했고 정치적 제스처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한참 나이 들어 20대 청춘을 즐거운 놀이와 정치로 범벅됐던 것으로 기억하는 세대가 곧 지금의 기성세대다.
이말삼초(二末三初). 을 즐기는 세대의 나이라 한다. 20대 말이거나 30대 초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여 년 전을 드라마로 침을 꿀꺽대며 음미하는 세대다. 7080세대에 비하면 되돌아보는 때가 많이 이르다. 그들이 공감하며 즐기는 드라마의 15년 전의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7080세대가 20대를 회고했던 것에 비하면 이 역시 더 어린 시절로의 복고다.
이말삼초의 15년 전은 분명 국제통화기금(IMF) 통치 경제로 어지러웠던 때지만 그 속 징후는 H.O.T거나 젝스키스다. 이른바 대중문화만이 그들 기억을 증거한다. 정치적·사회적 사건은 생략된다. 이말삼초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더 빨리 과거를 회고하기 시작했고, 그 회고 대상은 기성세대의 대상보다 훨씬 더 어린 시절이었다. 그리고 정치와 놀이를 범벅하던 7080과는 달리 이말삼초는 쿨하게 놀이만으로 그 시절을 떠올린다.
살다가 지쳐 과거를 돌아본 세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살기를 시작하거나 앞두고 있으면서 획 뒤돌아보는 세대. 앞세대는 죽기 살기로 살았으나 허무하고, 뒷세대는 죽기 살기로 살아야 하는 일이 두렵다. 허무하니 다시 해볼 수는 없을까 생각에 황금 같던 ‘아, 스무 살’을 찾고, 두려우니 아무 걱정 없던 고등학교 시절을 찾는다. 앞쪽은 아직도 분기탱천하는 듯하고, 뒤쪽은 늘 망설인다. 그래서 먼저 살기도 했지만 힘이 넘치는 앞세대는 뒷세대를 몰아세운다.
아직까지는 7080의 정치적 무의식이 이말삼초와의 대화를 막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면 된다’로 열심히 신자유주의 안에서 살자는 권유가 더 대세다. 치열함을 비켜가려는 소박하지만 현명한 이말삼초는 얼치기쯤으로 대접받을 뿐이다. 그래서 이말삼초는 안철수에 더 열광하고 7080이 좀체 주목하지 않던 케이블 채널에서조차 진주를 건져내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에게 주류는 허세다. 그래서 섬세하고 꼼꼼함으로 사람답게 살 방식을 전하는 쪽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
정치적으로 응답하라 1997
‘환멸의 시간’에서 재해석의 대상이 된 1990년대
386의 정치적 경험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세대의 기억
주변 또래 여성 대부분이 에 열광하고 있다. H.O.T나 젝스키스의 시대를 추억하는 대화가 술자리에서 부쩍 늘었다. 1980년대 후반생만 되어도 같은 걸 경험했지만 정서는 동감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해가 간다. 우리 또래도 서태지를 겪었지만, 1970년대 초·중반생들의 경험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스포츠로도 써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게 ‘그 시대’는 황선홍과 홍명보가 축구 대표팀을 주도하던 시대, 강동희와 이상민이 ‘라이벌’이던 시대, 신진식과 김세진이 배구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하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차범근과 선동열에 대한 기억이 없거나 희미한 내게는 황선홍과 구대성이 최고의 선수였다. 1994년에 나도 황선홍을 욕했지만 곧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추억과는 별도로 이 시대를 말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물어볼 필요도 있다. 1990년대가 추억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끝없이 생산해낼 수는 없고 ‘추억’도 소비할 것으로 만드는 문화산업의 요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걸 ‘퇴행’으로 보겠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당시의 서사는 대중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이기도 했던 것이다.
가령 처음 정치에 관심을 가졌을 때, 나는 나와 함께 운동하는 선배들 대부분이 1980년대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1990년대를 일종의 ‘환멸의 시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1990년대는 대중문화가 민중문화를 압도한 시대, 선배나 동료들이 사회주의를 ‘청산’하는 것을 본 시대, 문건을 쓰던 이론가들이 매체에 글을 쓰는 문화평론가로 변신하는 것을 본 시대였다.
그래서 내 또래 중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은, 그들의 기억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여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일부러 그러지 않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논리를 학습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기억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기억을 수월하게 받아들였고, 누군가는 저항했으며, 누군가는 모순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선배들의 전승을 받아들였더라도 결국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그들과 같지 않았다. 이는 의 서사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2000년대 누리꾼의 정치 참여의 장을 열어젖힌 노사모의 조직 모델이 H.O.T 팬클럽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2000년대 정치토론 게시판 문화를 함께 만든 것이 당시의 30대와 20대였는데, 20대가 게시판에서 논쟁을 걸면 30대는 전화를 걸어 대꾸하는 그런 상황을 많이 보았다. 386세대(당시엔 그들이 30대였다)와 함께 묶인 그들 내부에도 그런 균열이 있었다. 그런 균열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또 내 또래 필자의 의무가 아닌가 싶다.
한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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