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에게 도시에서의 여름은 고역이다. 설령 휴가가 찾아왔다 하더라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 어영부영 찜통더위에 익어버리게 마련이다. 부지런한 자에게도 도시에서의 여름은 고역이다. 시원하고 공기 맑던 휴가지에서의 달콤한 추억이 자꾸만 일상을 방해한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 개울가에 텐트만 쳐도 그곳이 무릉도원이건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장비가 없고, 어떤 이는 주말을 통째 캠핑으로 보내기 부담스러울 터. 떠나고 싶지만 도시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면 이런 곳은 어떨까. 최근 대세인 캠핑 유행을 타고 도심 곳곳에서 ‘도시 탈출’의 기분을 낼 수 있는 카페 몇 곳이 문을 열었다. 이른바 캠핑 카페. 여럿이 왁자하게 가도 좋고 단둘만의 여행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도심에서 캠핑하고 싶어 연 까페
입추가 지나며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주말,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아이엠캠퍼’를 찾았다. 아이엠캠퍼는 2011년 5월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캠핑 카페다. 입구에서는 가게 주인 이진모씨가 바비큐 그릴 위에 두툼한 고기를 얹어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실내 천장에는 타프(햇빛 가리개)가, 그 아래엔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캠핑용 토치며 랜턴, 바비큐용 숯까지 곳곳에 캠핑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장비가 그득하다.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켰다. 볶은 채소며 그릴에 구운 소시지, 목살이 접시에 한가득 담겨나왔다. 돌부리에 걸터앉아 힘들게 고기를 구웠던 캠핑의 기억이 민망하게, 준비된 음식들이 착착 나왔다. 가게 안 네댓 개의 테이블을 채운 사람들은 여느 캠핑장에서 봐왔던 구성이다. 가족, 커플, 친구들로 보이는 무리가 속속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이엠캠퍼를 운영하는 이진모씨는 15년 경력의 캠퍼다. 가게를 운영하는 지금도 일요일이면 문을 닫고 캠핑을 간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떠나는 것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어느 날, ‘도심에서도 이렇게 불 피우고 고기 구워먹으며 얘기 나눌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은 현실로 직행했다. 이진모씨는 2000년대 초·중반 홍익대 근처에 카페가 하나둘 문을 열 때, 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카페로 유명했던 ‘360 알파’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오래 카페를 해온 노하우와 더 오랜 캠핑 경험을 살려 캠핑 카페를 차렸다.
처음 가게 문을 열고는 조금 당황했다. 자신과 같은 캠퍼들이 찾을 줄 알았으나 그들은 산으로 들로 떠나기 바쁘다. 오히려 손님의 대부분은 초보 캠퍼 혹은 아직 캠핑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이다. 그중에서도 직장인 여성이 70% 정도 된단다. “캠핑에 익숙한 사람들과 도심에서도 캠핑장의 분위기를 공유할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죠. 캠핑을 떠나고 싶은데 막상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요. 장비부터 캠핑장 추천까지 손님들의 문의가 잦아요.” 그래서 그는 아예 캠핑학교를 열기로 했다. “캠핑 인구가 100만을 넘는다는데, 지금 과도기를 지나고 있어요. 한국에서 캠핑의 시작은 향락객 문화예요. 돗자리 펴놓고 술 마시고 놀고 하다가 지금은 고가의 장비를 갖춰야 가능한 것으로 옮아왔죠. 둘 다 캠핑 정신에 맞지 않죠. 진짜 캠퍼가 많지 않은 점이 안타까워요. 학교를 열어 로프 묶는 법부터 장비 활용법까지, 비싸지 않고 좋은 장비를 구입하는 법까지 시시콜콜 알려줄 계획이에요. 저랑 하루만 캠프 다녀오면 마스터할 수 있도록요.” 캠핑 카페에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나아가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흙을 밟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진모씨의 바람이다.
호텔 객실 수준의 ‘글램핑’
경기도 부천 중동, 음식점과 술집으로 그득한 먹자골목의 한켠에 텐트 치고 바비큐 먹는 장소가 있을 것이라 누가 생각할까. 오래된 건물의 3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때까지만 해도 ‘지금 캠핑 떠나는 중’이라는 기분은 전무하다. 그러나 3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캠핑장이 열린다.
‘힐링캠프카페’를 운영하는 탁은성씨는 캠핑카 사업을 하다 캠핑 트레일러를 카페로 몰고 들어와버렸다. 카페는 크고 작은 텐트 9동과 캠핑 트레일러로 채워져 있다. 숯향 진한 바비큐 냄새가 텐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텐트에 들어앉아 판을 벌인다. 텐트 바깥으로는 캠핑용 릴랙스 체어가 줄줄이다. 편한 자리에 앉아 고기 한 점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니 비록 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깥 풍경은 네온사인 그득한 골목이지만 텐트 아래 몸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번잡한 곳과 영 멀어진 기분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퇴근 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친 회사원 무리, 전 직장 동료라는 여성 둘이 각각의 텐트 아래서 자신들만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직장인 신아무개(43)씨는 캠핑을 종종 떠난다는 전 직장 후배 이아무개(34)씨의 손에 끌려 이곳을 찾았다. ‘리조트형’ 여행을 즐긴다는 그에게 캠핑은 어불성설이었다. “힘들어서 캠핑 엄두도 못 내는데, 퇴근 후에 이렇게 캠핑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니까 자주 올 수 있겠어요. 캠핑장 가서 음식 해먹으려면 얼마나 번거로워요. 편해서 좋아요.”
신씨가 말한 ‘편한 캠핑’의 고급 버전은 요즘 업계에서 상품으로 내놓고 있는 ‘글램핑’이다. 글램핑은 글래머러스 캠핑(Glamorous Camping·호화로운 캠핑)의 줄임말로 호텔 객실 수준의 고급 텐트에 야외 바비큐 디너 등이 구비된 캠핑이다. 캠핑지에서처럼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나거나 야생동물이나 끔찍한 벌레를 마주할 일 또한 없는, 불편함을 최소화한 캠핑이다. 글램핑은 유럽에서 시작해 캐나다와 미국으로 유행이 옮아오자 국내에서는 제주의 주요 호텔을 중심으로 상품화했는데 그 유래를 좇자면 1900년대 초반에 이른다. 1900년대 아프리카로 떠난 미국·유럽 여행자들이 야생을 탐험할 때 큰 규모의 사파리 캠프에서 지냈는데 킹사이즈 침대, 럭셔리한 침구며 가구가 갖춰진 큰 텐트에 시중 드는 사람과 요리사까지 딸려 있던 캠핑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자연 속에 집안의 편안함을 고스란히 가져온데다 특히 국내에서는 캠핑 장비를 마련하는 데만 수백만~수천만원이 드는 경우가 허다하니 장비와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글램핑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캠핑 트렌드 덩치 커”
도심의 캠핑 카페를 가격을 낮추고 대중화한 글램핑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까. 탁은성 대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캠핑이라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거잖아요. 그런데 요즘 캠핑 문화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이에요. 글램핑은 ‘귀족 캠핑’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최소한의 것으로 자연을 힘들게 하지 않고 돌아오는 캠핑의 원래 취지에 맞지 않죠.” 요즘 카페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는 탁씨는 도심의 빌딩에 캠핑장을 차렸지만 손님들이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경험을 하길 바란다. “멀리 나가기 힘든 분들이 도심의 캠핑 카페를 많이 찾잖아요. 반대로 도시에서 조금 불편한 캠핑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올해 5월에 문을 열고 앞으로 첫겨울을 맞게 되는데, 전기히터를 틀지 않을 계획이에요. 손님들이 왜 이렇게 추우냐고 물으면 ‘캠핑장은 겨울에 원래 춥잖아요’라고 대답해야죠. 식당이나 카페보다는 캠핑장과 가까운 형태로 조금씩 바꿔나갈 예정이에요.”
서울 북가좌동 ‘아웃로드’의 신언미 대표는 오랜 여행자다. 스킨스쿠버, 오지 트레킹 등을 꾸준히 즐겨왔다. 한번은 함께 여행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 캠핑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연습 삼아 한국에서 몇 차례 캠핑을 다녀왔는데 그길로 캠핑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일본 여행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캠핑에 뛰어들었다. 여러 번 캠핑을 거듭하다 보니 자연에서 느낀 휴식과 행복했던 순간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올해 캠핑 5년차가 된 그는 20년 가까운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올봄 캠핑 카페를 열었다. 인조잔디를 깔고 콘크리트 벽에 해먹을 걸었지만 최대한 야외 캠핑장에 가까운 모습으로 꾸몄다. 아버지가 물려준 15년이 넘은 랜턴, 선배 캠퍼가 물려준 30년 넘은 휘발유 버너 등 이야기가 담긴 소품들이 가게 곳곳을 채우고 있다.
시내 중심가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다 보니 아웃로드는 알음알음 찾는 사람이 많다. 텐트 한 동에 테이블 셋으로 구성된 소박한 가게는 규모가 크지 않아 그곳에 들어선 순간 모두 캠핑 동료가 돼버린다. “가게가 좁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도 결국 테이블을 넘나들게 돼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니 얘기도 잘 통하고요. 카페를 찾았다가 온라인 동호회 회원이 돼서 주말이면 저희랑 같이 트레킹이나 캠핑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손님이 친구가 되어 나가는 공간이에요.”
최대한 자연에서 난 재료를 사용한 메뉴들은 캠핑의 연장이다. 더덕구이는 매실과 키위로 단맛을 내고 장아찌는 오래 끓인 육수로 담근다. 이렇게, 집에서 마련한 음식을 먹을 만큼만 가져가 간소하게 즐기고 오는 것이 신씨가 추구하는 캠핑이다. “우리나라 캠핑 트렌드는 덩치가 커요. 큰 장비, 오토캠핑에다 먹을 것, 마실 것 잔뜩 싸들고 가는 것은 캠핑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그런 규모에 피로해진 분들이 배낭 하나 싸들고 가는 백패킹이나 미니멀한 캠핑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지금은 그 과도기죠. 카페를 통해 작고 담백한 캠핑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요.”
자연에 부담 안 주고 간소하게
세 명의 카페 운영자들은 도시에서 캠핑의 정취를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바람으로 출발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이상의 것을 공모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맛보기로 캠핑의 즐거움을 느꼈다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 도전해보라는 것, 최대한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고 간소하게 떠나보라는 게 이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그러니 게으른 자든 부지런한 자든 캠핑 카페를 함부로 찾아선 안 될 일이다. 도시 탈출이라는 달콤한 유혹의 말이 바비큐 향에 실려 귓전을 맴도는 탓이다. 그러나 실내에 친 텐트 아래서 편하게 고기를 씹어 삼키는 것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것까지 주인장들이 책임지겠다니, 우리는 결국 캠핑 카페라는 정거장을 거쳐 떠날 수밖에 없는 걸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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