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나방이 날아오르고 주황색 곤충이 우글우글 기어간다. 신사임당이 그린 와 비슷해 보이고 이젠 흔하디흔한 꽃 그림의 변종으로도 보인다. 신사임당의 식물이 정지된 느낌인 데 반해 이미지 속의 식물과 곤충은 좀더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다리를 쫙 편 오른쪽의 야생벌은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가차없이 쏘아댄다” 하고 나비의 바깥쪽 날개는 “둥근 아치처럼 불꽃이 타오르는 형태”란다. 그림 곁에 쓴 작가의 관찰기다.
그림을 남긴 이는 사교모임도 마다하고 소녀 시절부터 곤충 연구에 몰두했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1647~1717)이다. 벌레를 끔찍한 악마의 소산이라 여겼던 300여 년 전 유럽에서, 그는 벌레 찾아 남아메리카 수리남으로 대장정을 떠났다. 1705년 출간된 책 를 선주문한 이가 달랑 12명이었다니 짐작이 간다. 국내에 (양문 펴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은 60여 장의 생생한 곤충 브로마이드다. 곤충을 마치 스타의 얼굴과 손동작을 묘사하듯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려내고 잡아냈다. 관찰과 기록은 집요하다. 날파리를 “조금만 건드려도 재빨리 달아나는 날렵”한 모습으로! 거미를 “공작보다 화려한 여러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게끔! 관찰한 대로 그려내는 일을 하며 메리안은 자기도 모르는 새 가장 아름다운 곤충 화보를 남겼다. “곤충을 사랑하는 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이라고 쓴 서문은 소박하다.
오늘날 미술과 과학 사이의 독특한 지형을 만든 예술가로 회자되는 그의 출발점은 귀부인용 꽃 그림이었다. 꽃 그림 전문 화가였던 아버지를 둔 메리안은 자수를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꽃 그림을 그렸고 첫 책도 이었다. 마리아는 귀족의 딸들에게 스케치와 유성물감 사용법을 가르치던 눈매로 곤충의 ‘표본’에 흠뻑 빠졌다. 곤충 ‘표본’에서 살아 있는 곤충의 ‘일생’으로 질문을 옮겨오자 그의 곤충 그림은 가장 역동적이고 과감한 그림이 되었다.
메리안의 곤충 그림은 관찰하고 탐구하는 그림이다. 드라마 에서 조선으로 건너간 의사 송승헌은 푸른곰팡이를 활용해 페니실린을 만들려고 붓과 먹으로 페니실린 제작법을 상세히 그린다. 드라마에서 송승헌은 그 종이를 홱 구겨버리기는 했지만, 참 흥미로운 연구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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