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똘아이구만~.” 술과 고기를 대놓고 먹어대며 자기를 서운하게 한 친구놈들을 성토하는 권시인을 보고 와잎이 속삭였다. 속삭여? 우리가 연인이야? 그냥 문자로 말하면 안 되겠니? 술과 고기로 디오니소스의 축제를 벌이는 자기랑 거의 비슷한데 왜? 성토 아닌 구토하는 게 달라서 그렇지~.
와잎의 부라림에 우리 집에서 하루 묵고 가고 싶어 하는 권시인을 택시 태워 겨우 내려보내고 귀가했다. 권시인아~. 와잎 없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아들 녀석을 재우고 거실로 나오자 와잎이 또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쌀은 떨어져도, 술은 안 떨어지는 집구석의 꼬라지하고는~. 와잎은 마트에서 수입 맥주를 싸게 팔길래 샀다며 자신이 얼마나 알뜰하냐고 살뜰하게 말한다. 다른 주부들은 과일이나 고기 등 생필품을 싸게 판다고 줄 서서 사오는데, 우리 와잎은 술 싸게 판다고 사오는구나~. 아주 살림꾼이 따로 없구나~. 하긴 너한텐 이게 생필품이구나~. 그 술값 아껴서 재벌 되겠구나~. 근데 아예 술을 안 먹는 게 더 빠르지 않겠니? 소파에 널브러져 아사히맥주에 피스타치오를 까먹으며 와잎은 “생맥 먹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널 보고 있어도 네가 보고 싶다도 아니고, 술 먹으며 술 먹고 싶다고 하는 유체이탈의 경지구만~. 장모님, 엄마도 이 칼럼 보고 있나요? 저 이렇게 살고 있어요~. 유체이탈을 하든, 주신이 접신을 하든 나 몰라라 하고 방에 들어가 자려는데 와잎이 말한다. “그냥 자게?” 결국 우리 부부는 새벽 3시까지 달렸다. 수입 맥주가 맛은 살아 있었다.
일요일 오후, 아들 녀석의 여자친구인 승주네 부모가 전활 했다. 아이들을 위해 모이자는 것. 부모를 위한 게 아니고? 그나저나 하루라도 못 보면 전화 통화라도 꼭 하고야 마는 아들 녀석과 승주는 믿거나 말거나 장래 결혼을 약속한 사이. 부모들이 음주를 하는 사이 소주잔을 들고 엄마·아빠 놀이를 자주 하다 그리 되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아무튼 미래의 사돈 식구와 우린 서초동에서 양과 곱창 등으로 양껏 1차 상견례를 하고 옥토버훼스트 서초점에 갔다. 하우스 맥주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옥토버훼스트는 정통 맥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 직접 만든 맥주인 탓에 시중의 생맥보다 도수가 높다. 흑맥주인 둥클래스부터 맥주의 본고장 체코의 맛을 자랑하는 필스너 우르켈 등 평상시엔 접하기 힘든 깊은 맛의 생맥에 와잎은 눈이 반짝였다. 우리는 가볍게 바인스맥주 4잔과 과일 안주를 시켰다. 메인 안주가 나오기 전에 무료로 제공되는 막대기빵을 크림소스에 찍어먹는 맛은, 여전히 고소했다. 승주와 아들 녀석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해방감에 홀가분한 몰지각한 두 부부는 짠을 연발했다. 얘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우스 맥주 5잔 먹은 와잎은 서서히 그분이 오기 시작했다. 사돈 부부를 붙잡고 술을 먹였던 것. 승주 아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잘도 받아 마셨다. 승주 엄마도 이에 질세라 부지런히 들이켰다.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가는 길, 세 사람은 뒷자석에 늘어져 있고 아이들은 그 무릎 위에서 얼굴을 맞대며 다정하게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난 애들에게 당부했다. “얘들아~ 술 못 먹는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제발~.” 문의 02-585-5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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