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윤 기자
우리는 ‘인도 음식 알레르기’를 앓고 있었다. 대학 2학년 겨울방학, 친구들과 인도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 가방에 라면을 챙겨넣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먹은 인도식 백반 탈리는 좀 낯설었지만, 곧장 남들이 먹는 것을 곁눈질해 인도식 볶음밥이며 탄두리치킨, 다양한 종류의 커리를 시도했다. 굵은 설탕이 씹히는 인도식 요구르트 라씨를 매 식사마다 시켰고, ‘뛰면서 즐기는 짜이 한 잔’의 여유도 누렸다. 인도 전통 복장인 펀자비를 사입고 돌아다니는 우리를 보고 시장 상인들은 “포 에인절스”라고 불렀다. 우리는 등에 날개라도 단 듯 팔락거리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 거리를 헤집었다. 그러나 한 달은 긴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토록 그리운 인도 음식이건만, 우리는 “노 프로블럼”을 외치는 인도 사람들에게 “노 인도의 맛”을 외치며 단 한 끼라도 향신료에서 벗어나보고 싶다며 울었다.
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극단적인 ‘중국 음식 알레르기’가 있음을 고백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슈마이 냄새를 맡는 것이 싫어 (중국인 거리가 있는) 요코하마역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아내가 중국 음식처럼 보이지 않게 중국 음식을 만들어 내줘도 한 입에 “이것은 우연히 중국 음식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 뿐, 어엿한 중국 음식이다”라는 말이 귓전에 쾅쾅 울린단다. 그러던 중 취재차 중국 구만주 지역과 몽골을 도는 2주간의 여행 계획이 잡혀버렸다. 일본의 교자와 비슷한 군만두조차 입에 대지 못하는 무라카미를 구제한 것은 피자, 메밀국수, 칼로리메이트 따위였다.
인도 음식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를 처음으로 구제한 것은 맥도널드였다. 세계적으로 표준화한 맥도널드의 치킨버거에 굴복하다니, ‘먹고도 뒷맛이 개운치 않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종이 부스러기만 남기고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내일 또 오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날, 치킨버거가 안전했으니 다른 햄버거도 괜찮을 것이라며 우리는 속이 편하도록 채식주의자용 ‘베지버거’를 시켜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의 인도 맛이었다. 귓전에 “이것은 햄버거의 모습이지만 어엿한 인도 음식이다”라는 말이 쾅쾅 울렸다.
음식에 적응을 못하니 뱃속도 긴장한 모양이었다. 모두들 변비를 앓았다. 특히 평소 집 밖의 화장실에서 큰 일을 잘 못 본다던 친구는 변비로 하루 일정을 취소하고 앓아누웠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었다. 유적지 보는 것에 취미가 없던 우리는 휴양지인 고아에 가서 일주일을 머무르던 참이었다. 맥주와 과자와 과일로 다시 살을 찌우고 있던 차에 우연히 들른 티베트 음식점에서 우리는 천국을 맛보았다. 뗀뚝은 한국의 수제비와 같았다. 모모란 걸 시키니 이것은 찐만두가 아닌가. 밋밋한 그 음식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렇게, 우리를 긍휼히 여긴 티베트 여신의 구원을 받고 우리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채 귀국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은 서울에서 다시 만난 티베트 여신, 종로구에 위치한 티베트 레스토랑 의 뗀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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