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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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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똘기가 오롯이

김광진 당선인의 ‘등불’ 문집
등록 2012-05-11 13:39 수정 2020-05-03 04:26

이번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4명을 배출한 나의 출신 고교는 지역에서 꽤나 알아준다는 비평준화 명문 고교였다. 본수업 시간보다 1시간 빠른 0교시 수업은 물론 야간 타율학습은 밤 12시까지 계속됐고, 주말에도 선택권 없이 학교에 나와야 하는 일련의 ‘교육행위’가 모범적으로 지켜지는 곳이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나는 학창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더 ‘똘기’ 충만한 학생이어서 학교의 통제 방식과 구시대적 교육 방식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문제아’였다. 모뎀을 통해 전화선으로 접속하던 PC통신의 파란색 게시판에 날마다 학내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올리던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멘토이자, 졸업 이후엔 줄곧 지역사회에서 같이 청소년 문화운동을 해오고 있는 P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분이 없었으면 고등학교 중퇴의 최종 학력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그런 나의 학창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은 ‘등불’이라는 동아리다. 등불은 순천고와 순천여고의 연합 동아리로 매년 2권의 문집을 내고 주말이면 모여 독서토론회나 작품에 대한 강평을 했던 문학동아리다. 내가 9기였고, 19기까지 이어지다 조용히 사라졌다. 모든 동아리가 그렇지만 문학 동아리라 해서 문학만을 하던 곳은 아니다. 술을 처음 접한 곳도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였고, 동아리 출신들끼리 지금은 결혼해서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고교 연애의 축이기도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 내 첫사랑도, 최근의 가장 마지막 사랑도 그곳에서 만난 후배였다.

컴퓨터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직접 모든 작품을 손으로 써서 책을 만들었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삽지나 그림 등을 얻으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작품 구걸을 하러 다니던 기억들, 돈이 부족하면 제본을 하지 못하고 복사만 해서 보관하기도 했고, 인쇄소에 잔금을 지급하지 못해서 교무실에 문집을 강매하러 다니던 기억도 난다. 그래도 매호 만들어가는 책은 일종의 자신감이었고 위안이었으며, 서로에 대한 의지였다. 지금도 내 방의 책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50여 권의 문집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10여 년간 그 추억의 공간과 사람들을 떠나지 못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삶을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다.

동아리의 맥이 끊어졌으니 새로운 후배가 들어올 수 없고, 다들 직장인이 된 이제 와서 다시 문집을 엮기에도 어색하지만, 행복했던 나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 한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19대 국회의원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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