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유명한 광대 슬라바 폴루닌의 직업은 원래 엔지니어였다. 본래 꿈과 거리가 먼 일을 하며 불행했던 그는, 어느 날 어머니 앞에서 1인극을 선보였다. 아들의 천부적 재능을 확인한 어머니는 연극이 끝나자 딱 한마디를 하셨다. “내일 당장 엔지니어 일은 그만두거라.” 폴루닌과 같은 꿈을 꾸는 한국인이 있다. 혹자는 무모하다 할지 모를 ‘제2의 인생’이지만 두렵지 않다. 폴루닌의 어머니처럼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주는 일생의 반려자가 있기 때문이다.
강윤수씨는 대학 시절 전공보다 연극이 더 좋았다. 무대 제작실을 강의실처럼 드나들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기생들은 모두 취업해 제 갈 길을 간 뒤였다. 고민 끝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몇 달 뒤 다국적 친구들이 함께 사는 집에 한 사람이 새로 이사를 왔다. 인근 고성의 장미정원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일본 아가씨 쿠도 도모코였다. 도모코는 졸업 뒤 의류회사에서 일했지만 플로리스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 전통 가옥과 정원이 잘 보존된 첼트넘으로 떠나 그곳에서 윤수를 만났다. 타국에서 미래를 찾던 남녀는 곧 절친이 되었다. 여러모로 비슷한 생각을 지닌 그들은 솔메이트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윤수는 도모코의 꼼꼼함과 알뜰함에 홀딱 반했다. 모두가 한 칸씩 나눠쓰던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깔끔하고 예쁘게 정리된 도모코의 칸을 보면 기분까지 좋아졌다. 그러나 용기 내어 고백하는 그를 도모코는 단호하게 뿌리쳤다. 물론 윤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단것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사들고 매일 방문을 두드려댔다. 일본 남자와 달리 적극적인 그가 부담스러워 피하던 도모코. 결국 윤수가 최후의 수단으로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선언해버리자 마음이 흔들렸다. 막상 그가 곁에 없을 것을 상상하니 쓸쓸함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함께 걷다 갑자기 멈춘 그녀가 말했다. “키스 미.”(Kiss me.)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뒤 도모코를 놓치기 싫었던 윤수는 일본 항공사에 취직했다. 일본어를 배웠고, 수없이 일본으로 날아갔다. 3년이 지나 도모코가 한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언어를 비롯한 모든 문화가 낯설고 힘들었다. 답답한 마음을 윤수에게만 쏟아놓다 보니 싸움이 되기 일쑤였다. 둘은 갈등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살림살이부터 이루고 싶은 꿈까지 목록을 쓰고, 저축을 하며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결혼할 때도 최소한의 비용만 쓰고 대신 통장에 살을 찌웠다. 알뜰히 앞날을 준비하는 일은 행복했지만 여전히 꿈을 포기 못해 갈등하던 윤수는 도모코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광대가 되겠다는데 그녀처럼 “당연히 원하는 일을 해야지!”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런던 생활 8개월차, 윤수는 신체극(Physical Theatre) 석사 과정을 밟는 동시에 이미 자신의 극단을 꾸렸다. 그가 배우 겸 연출을 맡고 있는 ‘케이크트리 시어터 컴퍼니’(Caketree Theatre Company)는 오는 6월 데뷔 공연을 앞두고 있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런던올림픽 스트리트 퍼포먼스 팀의 자격도 얻었고, 한국에서도 공연을 열 예정이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모험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하지만 도모코가 있기에 외롭다고 느낀 적은 한순간도 없다. 윤수와 도모코에게 결혼은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고, 부부는 서로에게 세상 가장 든든한 지지자다.
“제 꿈을 이루고 나면 도모코 뒷바라지를 할 계획입니다. 요리학교에 다닌 뒤 손님에게 어울리는 꽃과 함께 디저트를 내놓는 카페를 차리는 게 꿈이거든요.”
꽃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커서 플로리스트가 되었다는 도모코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목련이다. 추위를 이겨내고 아름답게 피었다 금세 저버리는 목련을 보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언젠가 빨간 방울을 코에 단 윤수씨의 공연을 보고 도모코의 카페에 들러 꽃과 디저트를 받아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지상 최고의 응원군을 얻은 두 사람에겐 그 꿈을 이루는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전 한국방송 아나운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