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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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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관계 푸는 김치찌개

등록 2012-08-02 13:48 수정 2020-05-03 04:26

“어휴, 무슨 찌개가 이렇게 짜냐. 한국 생활이 몇 년째인데 김치찌개 하나 제대로 못 끓이냐고….”

명수씨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손류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명수씨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불평만 늘어놓으며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손류씨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여보, 나… 배가 너무 불, 편, 해…. 내 배가….”

아내의 고통 섞인 목소리에 깜짝 놀란 명수씨는 허겁지겁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손류씨가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이마에는 수도 없이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명수씨는 구급차를 부를 겨를도 없이 그녀를 등에 업고 근처 병원으로 죽을 듯이 내달렸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얀 게 오직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아내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제야 뼈저리게 느낀 거죠. 바보처럼….”

손류씨를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명수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오로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에 와서 사는 그녀를 왜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퇴근이 늦는 남편 없이 혼자 저녁을 먹는 시간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언어도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회사일과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한국과 중국은 이웃 나라지만 알고 보면 얼마나 문화적 차이가 크던가. 그런 사람에게 고작 김치찌개 맛이 어쩌고 하는 타박이나 했다니…. 명수씨는 자책감과 미안함, 혹시 큰일이 벌어진 것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에 안절부절 못했다.

이명수씨는 군 제대 뒤 중국 베이징 사범대학으로 유학의 길을 나섰고 곧 새로운 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대학 은사가 베이징을 방문하셨고 1박 2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런 기회를 얻어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서툰 중국어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문득 문학수업 시간에 잠깐 보았던 손류씨가 생각나 도움을 청했고 친절한 그녀는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다. 아침 일찍 나선 여행길에 배가 고파올 무렵, 한적한 중국의 작은 마을, 곱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로 명수씨와 은사님을 안내한 손류씨가 가방을 열더니 도시락을 꺼내놓았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야외로 놀러 갈 때 김밥을 싸가더라고요. 그런데 김밥은 아직 잘 만들지 못해서 평소 즐겨먹는 돼지고기 김치볶음을 만들어봤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고향의 맛이 담긴 도시락, 그녀의 정성과 세심한 배려에 그야말로 감동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여행 뒤에도 그녀 얼굴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그냥 스쳐가는 인연일 수 있었던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싹트게 되었다.

3년이란 시간이 흘러 또다시 가을이 찾아왔고 명수씨는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프러포즈를 했고 그녀도 받아들였지만 장인 장모께서는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명수씨는 그녀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런 간절한 마음을 그새 잊고서 아내의 마음에 비수를 꽂다니…. 그녀가 무사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명수씨는 다짐에 다짐을 했다. 자궁내막증 판정을 받았지만 무사히 수술을 마친 손류씨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너그러움과 끝없는 한국 사랑에 또다시 감동이 밀려왔다. 커다란 위기를 맞았지만 그 일은 두 사람 사이에 오히려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운 사건이 되었고 이제 둘은 서로에게 서운한 일이 있을 때마다 김치찌개를 사이에 두고 푼다. 두 사람은 심지어 김치찌개가 자신들의 사랑과 화합의 상징이라며 예찬론을 펼친다.

전 한국방송 아나운서· 저자

사진설명: 돼지고기 김치볶음에서 이들의 사랑은 시작됐고, 김치찌개로 사랑은 이어졌다.

손류와 이명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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