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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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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로맨스?

사랑에 빠지고 싶은 아저씨들… 에로티시즘보다 더 간절히 그리운 건 중년의 결핍과 불안을 메워주는 타자의 인정과 자기 존중
등록 2012-04-27 17:45 수정 2020-05-03 04:26
» <한겨레21> 박승화

» <한겨레21> 박승화

쉿, 이건 비밀인데, 회사 옆자리에 앉은 이아무개씨에게서 요즘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다. 결혼 15년차를 넘긴 그는 술자리가 깊어질라치면 “연애하고 싶다”고 하소연을 한다. 자타 공인 일중독자면서 능력 있는 사원으로 인정받는 그다. 아내와는 아무 문제가 없다. 동지처럼,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낸다. 다만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양육과 경제를 공동으로 부담하는 이 공동체가 무난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배웠다. 결혼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욕망과 좌절을 털어놓는 전심 공동체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난해 문득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삶의 틈새를 찾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더니 꺼질 줄을 모른다.

나이 오십을 넘긴 윤아무개씨는 얼굴도 모르는 어떤 여자에게 여러 달 설레었다. 상대 여자가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 그에게 잘못 보낸 게 계기가 됐다. 잘못 온 문자에 그가 이런 답변을 보냈던 걸 보면 그간 외로웠나 보다. “그대의 남편이 누군지 몰라도…” 그렇게 시작해 문자가 수도 없이 오가고, 통화도 했다. 그러다 서로의 나이와 처지를 조심스레 확인한 뒤 만날까 말까 저울질이 시작됐다. 거기서 끝내버렸다고 했다.

로맨스에 들뜬 남자들

달콤하고 알싸한 것이라면 폭탄주밖에 모르던 아저씨들이 달라졌다. 대놓고 설렘을 이야기한다. 지난 3월 일본 잡지 의 한국판이 창간호를 냈다. 이 잡지는 20~30대 못지않은 패션감각을 갖춘 중년 남성을 만들겠다며 신상품들을 소개하는 데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지만, 회심의 승부수는 단연 ‘인기 있는 아저씨가 되는 법’이다. ‘사랑받는 남자라면 좀더 멋지게 자전거를 타야 한다’거나 ‘사랑받는 남자는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여러 정보를 소개하는 등 페이지마다 사랑받고 싶은 남자들을 노린다. 지난해 8월31일 개봉한 영화 에는 아저씨들의 로망이 가득했다. 이 로망은 어린 여자를 꿈꾸는 롤리타콤플렉스와는 결이 달라 보인다. 조폭 출신이지만 착하게 살기로 한 두헌(송강호)이 세빈(신세경)을 지키려고 악전고투하는 이야기 속에는 젊지 않아도, 지금의 사회적 지위에서 밀려나더라도, 경험이나 경륜 덕에,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아저씨들의 욕망이 엿보인다.

아저씨란 누구인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씨는 한국 남자의 존재론을 분석한 에서 아저씨를 “온갖 불쾌한 모습의 총화”로 묘사한 일이 있다. “아저씨는 권력 상실의 불안에서 시작하는 무례, 분노, 적개심, 공격성의 총화다.” 여기에 “끊임없이 로맨스를 꿈꾸며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정의를 추가해야 할지 모른다. 이 취업전문 포털 ‘잡코리아’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26%의 남자들이 첫사랑이 생각날 때, 22%가 배우자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로맨스를 꿈꾼다고 했다(기혼자 176명 포함, 응답자 502명). 멋진 외모를 가진 이성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남성의 비율은 15.4%로 같은 대답을 한 여성 16.7%보다 오히려 적었다. 바라는 로맨스 상대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이성이 압도적(43.3%)이다. 지금 아저씨들이 로맨스를 꿈꾸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출판평론가 한기호씨가 쓴 에 따르면, 경제위기 직후엔 불륜을 다룬 콘텐츠가 각광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대공황 직후의 소설들이 그랬고, 일본에서도 버블 붕괴를 겪자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이 일본 역사상 최초로 300만 부를 기록했다. 우리도 1997년 금융위기 직후 은희경의 나 전경린의 처럼 ‘불륜 코드’를 담은 소설들이 떴다. 게다가 지난 공황에는 경제적으로 파산한 남편과 아버지로 인해 가족의 울타리와 결혼의 의미가 흔들렸다면,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엔 “홀로 서야 하는 개인의 절대 고독”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위기는 불안의 한 가지 이유에 불과할지 모른다. 김정운씨는 전화 통화에서 “기존 남자상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길 바란다”며 “생명 연장이 불러일으킨 존재적 불안이 있다. 한국 남자들은 자신에게 어떤 매력이 가능한지를 상상조차 못한다. 정체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가는 절박한 문제”라고 말했다. 사랑은 사회적 유대감의 다른 말이다. 불안에 직면한 이들을 잡아끄는 강렬한 욕망이다.

» 영화 <은교>.

» 영화 <은교>.

나는 왜 당신을 사랑하는가

4월26일 개봉하는 영화 는 사랑의 욕망이 평생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확신으로 이끈다. 같은 종자가 같은 싹을 틔운다. 로맨스는 실용주의로부터 발아하기 어렵다. 지금 시대의 로맨스는 “젊었으므로 뜻과 이상에 파묻혀 살았고, 역사의 진보를 믿었으며, 사람을 숭상했고 친구나 동지, 꿈과 이상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렸고 눈앞이 환해졌던”(소설 ) 그들로부터 나온다. 는 우리 시대를 파고드는 로맨스 열망을 “에로티시즘, 그것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는 조르주 바타유의 말을 인용해 반쯤 끝나버린 삶을 다시 태우려는 생명에의 의지로 호명하는가 하면, 혹독한 굽이를 넘어 결국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신성한 순간으로 받든다. “나는 평생 온갖 명분의 깃발을 치켜들고 살아왔다. …하지만 껍데기 다 날려버리고 남는 것, 내가 온갖 불온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진실로 간절히 그리워한 것은, 처녀의 숨결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런 탐미적인 태도를 허용했더라. 영화에서 여고생 은교(김고운)를 사랑하게 된 나이 든 시인(박해일)은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거듭 외친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진술에선 젊은 사랑, 결혼을 향한 사랑, 어떤 형태로든 생산적인 사랑만 아름답다고 정해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전해진다.

영화에서 분노한 노인은 제자를 처형하지만 현실에서 로맨스를 꿈꾸던 아저씨들은 자신을 처형한다. 김아무개씨는 로맨스라는 말에 손발이 오그라들던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다. 지난해 부서 회식 자리에서 15살 어린 후배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몇 번 문자를 주고받다가 아내에게 들켰다. 아내의 반응은 경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맥없이 좌절된 꿈은 이상한 뒤끝을 남겼다. 후배가 이미 마음이 달라졌어도, 다른 부서로 갔어도 자꾸 그 주변을 배회한다. 집에서는 잠잠해졌지만 오히려 회사에선 소문이 파다하다. 남의 집 일이라고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아저씨의 로맨스는 배우자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파탄 지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문제는 범인이 로맨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을 쓴 리처드 테일러는 “자신을 배신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결혼생활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고 조언한다. “외도는 부부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실패한 결혼의 징후”라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보라”고도 한다.

» 영화 <푸른 소금>.

» 영화 <푸른 소금>.

정신적 외도로 자아를 확인하는 남자들

냉담했을지언정 나는 다른 꿈은 꾸지 않았다. 신성한 결혼의 서약과 숱한 공동체 의식을 함께 치른 그는 왜 다른 사람을 꿈꿀까? 전문가들은 “새로운 상대와 성적 모험을 해보겠다며 외도를 꿈꾸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로맨스라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부분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되찾으려고 로맨스를 찾는다. 리처드 테일러는 “남자는 자아존중감을 키우기 위해, 여자는 소중히 여겨지기 위해 불륜을 저지른다”고 했다. 를 쓴 정신분석가 이승욱씨는 “남자는 인정받기 위해, 여자는 공감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했다. 이승욱씨는 “남자들이 짐승이거나 윤리관이 희박해서 외도하는 경우가 현실에서 있기는 할 텐데 상담실에서는 보지 못했다”며 “결혼생활을 통해 원인 모를 죄책감과 무능감을 키워오던 남자들이 어떤 매력적인 여자가 나를 인정해주면 그것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푹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로맨스를 실현해본 이들은 “죽어 있던 피가 빠르게 도는” 강렬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승욱씨는 “천국을 맛본 자가 지옥으로 돌아오는 심정”에 비유한다. 다시 충족될 길 없는 자존감의 황홀한 상승 경험은 기억 속에서 훨씬 더 과대포장된다. 거기에 죄책감까지 얽혀 감정의 층위는 한층 복잡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외도를 할 때 여자보다 남자가 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상담실에서

» <한겨레21> 박승화

» <한겨레21> 박승화

여자들은 자신의 외도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애인을 둔 상황을 더 오래 지속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털어놓는 반면, 남자들은 죄책감에 눌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피해자-여성과 가해자-남성의 구도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자신이 다른 상대에게 눈을 돌린 이유가 대부분 남편 탓이라고, 힘든 결혼생활을 견디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믿는 반면, 남자들은 이런 행동이 자기 안에 있는 결점이 표현된 것이라고, 그래서 가정을 지켜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여긴단다.

로맨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로맨스가 지나간 자리는 황폐하다. 사회적·가정적으로 맺는 관계가 황폐해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 안에서 빈틈이 커진다. 이 로맨스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승욱씨는 “욕망이 다가가는 지점이 나의 결핍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마음을 끄는 대상을 보고,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지적이고 따뜻한 여성에게 꽂혔다면, 그 여자가 아니라 내게 결핍된 지성과 따뜻함을 욕망한다는 신호다. 내가 지적이고 섬세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내 결핍을 손쉽게 채우려고 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해봤자 다른 사람의 특성은 내 것이 아니다. 허전한 나머지 욕망의 대상을 옮겨다니기도 한다. 여태껏 내가 잘 사용해오지 않던 씨앗 상태로 남아 있는 내 안의 가능성을 꽃피우려는 것, 이게 정신분석학적으로 외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지 않을까”라고 분석한다. 결국 내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게 로맨스의 종착역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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