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1881~1955)의 그림 (1951) 앞에 서면 큰 노동자들이 보인다. 고층빌딩을 짓던 노동자가 밀폐된 하얀 벽 위로 불시착한 느낌이다. 장난감 레고 병정을 닮았다. 굵은 팔뚝으로 무엇인가 하지 않고서는 가만히 배길 수 없는 남자들이다. 정면을 보고 있는 폼이 진지하기는 한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별 고민 없는 별종들 같다. ‘빠삐용’의 줄무늬 옷도 보인다. 그림 속 사람들은 기계를 닮았다. 현실에서 춤을 춘다면 삐걱대는 꺽다리 춤, 일을 한다면 배관이나 환등기 수리공의 동작이다.
레제는 가난한 집안의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신데렐라가 먼지투성이였다면, 레제는 질문투성이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면서부터 작가는 제 질문의 단초를 원통형에서 찾기 시작했다. 직선과 곡선으로 끊임없이 둥근 참호를 파내는 공병으로 일하며 얻은 현실감각이었다. 용광로, 공장 내부, 철도, 건널목. 무엇보다 인물의 든든한 어깨와 견고한 팔뚝은 그가 ‘직접’ 본 것들이었다.
그림 속 인물은 쇠붙이와 콘크리트에 휩싸여 있다. 사람은 기계처럼 재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 기계 몸통처럼 몸에 나사가 있다면 무엇이든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노동자의 손과 팔뚝을 원형의 쇠파이프처럼 그리며 작가는 ‘인간의 손이 기계의 손처럼 작동할 수 있을까’ 질문했다. 숱한 의문 속에서 기계를 낙관적으로 본 것은 기계야말로 노동시간을 단축해 사람들에게 여가와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 믿어서였다. “기계가 이제는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다.”
원통은 레제가 세상을 자기화하는 방법이었다. 둥근 쇠파이프를 만들던 남자의 어깨는 회색 빛깔의 실제 쇠파이프를 너무도 닮아 있다. 당시 이 그림을 본 노동자들은 ‘그림 속 인부들의 손이 너무 뭉뚝한데 무슨 일을 하겠는가’ 비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제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의 손은 그들의 도구와 닮았고 그들의 도구는 그들의 손과 닮았다. 그들의 손은 너무 많이 사용돼 형태가 변형되고 구축된다. 그들의 손이 우리의 현재를 만든다.”
작가는 노동자야말로 미래의 주역이라고 끝까지 믿었다. ‘일’하는 노동자만 그리지는 않았다. 그림 속에서나마 일하던 노동자들을 소풍 보내기도 하고 가끔 다이빙도 시켜줬다(‘여가’ 연작). 원통의 꿈을 회전하는 세계와 연결해 축제풍의 ‘서커스’ 연작도 그렸다. “건강, 삶, 형태, 색채. 사무실이나 공장의 먼지를 뱉어내고 탁 트인 야외의 공기를 들이마시는군. 그들과 같은 힘만 있다면 무엇이든 세울 수 있지.” 아, 너무도 낙관적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일터가 아닌 다른 곳에 있으리라는 레제의 긍정적인 눈을 나도 때로는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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