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0대의 사교장, 언니들은 가라~

주점의 치밀한 계산으로 나이상한제 적용하는 부킹주점의 세계… 20대 고객 중심으로 세 넓히는 그곳에 서른 둘 언니가 떴다
등록 2012-03-31 12:20 수정 2020-05-03 04:26
“신분증 주세요.”
“아, 신분증요? 안 가져왔는데요.”
“저희는 신분증 없으면 안 됩니다.”

지난 3월20일 저녁 7시30분. 서울 강남역 앞 ㅂ주점에서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곳은 1993년생부터 1984년생까지, 즉 20살부터 29살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 한국 나이로 30살, 만 29살도 안 된다. 나이 상한제가 엄격하게 적용된다. 입구에는 ‘쯩이 없다’면 ‘다음에 오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올해 30살이 된 김지은(가명)씨와 장수연(가명)씨는 멈칫했지만, “몰랐는데 83년생은 안 되나요~”라며 비굴한 애교 행각 끝에 입장할 수 있었다.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속인 32살 기자는 최대한 눈을 내리깔았다. 이미 경쟁력은 땅끝까지 떨어졌다.

» 마음에 드는 이성이 앉은 테이블에 ‘큐피드 카드’를 보내 자리를 합석하는 등 부킹을 할 수 있게 하는 ㅂ주점 경상남도 진주 지점 모습. ㅂ주점은 전국 40곳에 매장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부킹주점’이 세를 넓히고 있다. ㅂ주점 제공

» 마음에 드는 이성이 앉은 테이블에 ‘큐피드 카드’를 보내 자리를 합석하는 등 부킹을 할 수 있게 하는 ㅂ주점 경상남도 진주 지점 모습. ㅂ주점은 전국 40곳에 매장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부킹주점’이 세를 넓히고 있다. ㅂ주점 제공

2012년판 큐피드 “같이 한잔 하실래요?”

이곳은 요즘 20대의 사교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부킹주점’이다. 부킹주점은 소주·맥주를 마시며 부킹을 하는 곳이다. 이름에 ‘블루’가 들어가는 술집의, 광택 나는 푸른빛 조명 아래 앉아 부킹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녁 8시께. 홀에 쫙 깔린 52개 테이블은 남자끼리 온 무리, 여자끼리 온 무리들로 채워졌다. 간혹 이성이 함께 오기도 했다. 여자 무리가 더 많다. 평일의 경우 오후 7시~9시30분에는 여자 손님이 더 많다. 밤 9시30분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남자 손님이 더 많다. 밤이 깊을수록 남자로 만석이 될 때도 있다. 남녀의 ‘시간 차 입장’이 상하관계를 결정한다.

보통 안주는 한두 가지만 시킨다. 테이블 합석을 위해서다. 테이블을 합석하게 되면, 먼저 먹던 테이블은 미리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 안주를 시켜야 한다. 테이블에 놓인 안주 접시의 음식량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이곳은 먹으러 오는 술집이 아니다.

남자들은 스캐닝을 시작한다. 같은 테이블의 남자들은 스타일이 유사하다. 한 테이블은 셋 다 양복을 입었다. 몸에 바싹 붙는 허리가 잘록한 스타일이다. 다른 테이블의 남자들은 힙합 스타일이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를 대동한 머리 짧은 그룹도 눈에 띈다. 스캔하러 돌아다니는 남자의 눈이 번득인다. 홀을 한 바퀴 휘휘 돌며 적합도가 높은 합석 대상자를 찾는다. 적합도에는 인원수, 옷차림, 나이 등이 고려된다. 여자들은 그 시선을 의식하며, 자세를 꼿꼿이 하고 앞에 놓인 맥주병을 들이켠다. 남자들은 합석 대상자가 눈에 들어오면 부킹 카드를 보낸다. 부킹 카드의 이름은 큐피드 카드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같이 한잔 하실래요?” “인원수가 맞으면 같이 놀아요.” “불타는 밤 같이 태워볼까요.”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간혹 사자성어를 이용한 참신한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아무 내용을 안 쓰기도 한다. 카드를 보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 큐피드 카드를 보낼 때마다 술값에 1천원이 더해지고, 받는 테이블은 술값에서 1천원이 빠진다. 지난 2월 친구와 이곳에 놀러온 강향아(23·가명)씨는 큐피드 카드 12장을 받아 술값에서 1만2천원을 할인받았다. ㅂ주점 고아무개 전무는 “10장 이상 카드를 받는 경우는 드물고, 3장에서 5장 정도가 평균적으로 받는 카드 수”라고 말했다.

우리 일행 옆자리에 있던 남성 3명이 갑자기 계산을 마쳤다. 이들은 세 번의 큐피드 카드 시도 끝에 뒷자리에 있는 3명의 여성 일행과 합석을 하게 됐다. 일행이 6명으로 늘어난 이들은 테이블이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합석한 테이블은 주로 게임을 한다. 게임의 필수 요소는 스킨십이다. 손을 쌓다가 맨 마지막에 손을 얹으면 술을 마시는 게임 등이 합석 테이블마다 끊이지 않는다.

옆 테이블 노는 모습만 손놓고 지켜보다 뒤늦게 ‘경쟁력’을 높이려고 22살 동생 둘을 급히 전화로 불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착오였다. 22살에서 32살까지 광범위한 연령 폭을 지닌데다 인원이 5명인 이들에게 큐피드 카드는 날아오지 않았다. 고용석 전무는 “사람 수가 5명이 넘어가고 연령대가 다양하면 남성들이 부킹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부킹에 가장 적합한 인원수는 2~3명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취향도 복잡해지고, 그러다 보면 부킹이 산으로 간다. 구성원의 스타일이 제각각이어서, 일행 간 합의도 어렵다. 결국 나이가 10살까지 차이가 나는 5명 우리 팀은 큐피드 그림자도 못보고 강남 주점을 나와야 했다.

» ㅂ주점 경상남도 진주 지점 모습. ㅂ주점 제공

» ㅂ주점 경상남도 진주 지점 모습. ㅂ주점 제공

아이패드로 부킹 쪽지를 날리다

지난해부터 문을 열기 시작한 부킹주점은 최근 점점 세를 넓히고 있다. ㅂ주점은 강남·신촌 등 서울 11곳, 경기 10곳 등 전국에 40곳의 매장을 열었다. 주말이면 줄을 서서 입장한다. 아이패드를 이용한 ㅁ주점도 서울 7곳 등 전국 12곳 매장을 열었다. 이 밖에도 건대입구, 홍대입구 등 젊은 층이 자주 가는 곳에 여러 종류의 부킹주점이 생겼다. 젊은이들은 왜 부킹주점에 가는 걸까.

유학생 박기범(22)씨는 “값이 싸서”라고 말했다. “강남 클럽에 가면 룸을 잡는 데만 120만원이고, 거기에 술을 더 시키면 150만원은 거뜬히 나온다. 그런데 부킹주점은 그냥 술 먹는 가격으로 이성도 만날 수 있으니 돈이 없을 때 가게 된다.” 쉬운 만남도 부킹주점을 찾게 하는 이유다. 강지영씨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데, 소개팅 말고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다”며 “그런데 술 마시며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수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쉬운 만남의 유통기한은 짧다. 박기범씨는 “부킹주점에서 나나 친구들이나, 애들이 하는 말을 보면 75%는 거짓말”이라며 “좋은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도 학교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다른 학교 이름을 말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곳에 가서 부킹을 해서 친구들과 놀다가 나중에 친구들끼리 맥주 한잔 하러 가면 ‘우리가 여기 왜 왔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강향아씨는 “친구들 중에 부킹주점에서 만난 사람과 사귀는 이도 있다”며 “편견 없이 만나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3월21일 저녁 8시. 이번에는 취업준비생 오진주(23·가명)·이희은(23·가명)·강지영(23·가명)씨를 데리고 신촌 ㅁ주점으로 향했다. 이곳은 술 마시는 방이 별실로 나뉘어져 있다. 대신 아이패드를 이용해 다른 방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술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 아이패드를 나눠준다. 아이패드에는 이 주점의 애플이 깔려 있다. 애플을 클릭하면 나이대(20대 초반·20대 중반·20대 후반 등), 성별, 인원수를 입력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자기 그룹의 이름을 입력한다. 이미 15개 정도의 그룹이 올라와 있다. ‘뿌잉뿌잉’ ‘두 남자’ ‘효리 없다’ ‘어디 한번’. 간단하고 즉물적이다. 오진주씨 일행은 ‘하이염~’이라고 그룹 이름을 만들었다. 그룹을 만들고 나면,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다. 카카오톡과 비슷하다. ㅁ톡이다. 그룹을 만들자마자 메시지가 온다.

“안녕하세요.ㅋㅋ”(두 남자)
“넹ㅋㅋ하이염ㅋㅋ”(세 여자)

민망함을 ‘ㅋㅋ’로 달래자 본격적인 질문이 들어온다.
“나이가 어케 되세요? ㅎ”(두 남자)
“23살이여. ㅋㅋㅋㅋ 그쪽은욤? ㅋㅋ”(세 여자)
“27살요 좀 많죠?”(두 남자)
“쪼금? ㅎㅎ”(세 여자)
“4살이면 궁합도 안 본다던데.”(두 남자)
“저희도 맘은 23살이에요. ㅋ”(두 남자)

나이 얘기가 오간 뒤, 본격적인 만남 제의가 들어온다.
“제가 게임에서 졌는데 소주 한잔만 주세요.”(두 남자)
세 여자가 잡담을 하느라 메시지를 못 보자 다시 메시지가 온다.
“벌칙이라 소주 얻어와야 해요.”(두 남자)
이제야 답한다.
“네, 오세요. 20번 방이에요.”(세 여자)

이날 자정까지 10여 팀이 아이패드로 말을 걸거나 직접 방문했다. 남자들은 주로 ‘술 한잔 주세요’라는 멘트로 방에 들어왔다. 대개 5~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돌아간다. 주로 묻는 것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지금은 몇 명인데 이따가 후배가 오면 사람 수가 차니 같이 노는 것은 어떤지’ 따위다. 이들은 이날은 합석을 하지 않았다. 오진주씨는 “어차피 하루 재미있게 노는 거라서 이왕이면 잘생긴 사람이 좋은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아이패드를 통해 사람들 나이, 인원수 등을 한번에 보고 고를 수 있고, 말을 걸거나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쉽고 빠른 만남에 아이패드가 속도를 붙였다.

» 아이패드를 이용해 부킹을 주선하는 서울 신촌의 ㅁ주점에서 20대 3명이 프로필 사진을 찍어 애플에 올리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 아이패드를 이용해 부킹을 주선하는 서울 신촌의 ㅁ주점에서 20대 3명이 프로필 사진을 찍어 애플에 올리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 ㅁ 주점에서 지급하는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애플은 성별, 나이대, 인원수 등을 입력해 어느 방에 어떤 그룹이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한겨레21> 박승화

» ㅁ 주점에서 지급하는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애플은 성별, 나이대, 인원수 등을 입력해 어느 방에 어떤 그룹이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한겨레21> 박승화

이곳은 20대가 지배하는 세상

30대는 함부로 부킹주점의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앞서 3월20일 ㅁ주점에 들어간 김지은·장수연 등 30살 일행은 마침 그날 술집 텔레비전에서 틀어둔 시사교양 프로그램만 유익하게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정승기(27·가명)씨는 “주로 거기 오는 친구들이 20대 초반이어서, 20대 후반을 넘어가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여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편 ㅂ주점 고아무개 전무는 강남점에서 29살로 ‘나이 상한제’를 적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강남점을 35살 이하로 운용해봤는데, ‘객단가’(한 사람당 내는 비용)가 현저히 떨어졌다. 밤 10시를 넘어가면 30~35살은 여성은 거의 없고 남성이 대부분인데다, 30살 이상 남성은 들어오면 소주 한 병만 시키고 안주는 안 시킨 채 부킹만 노리기 때문이다.” 30대의 ‘생활의 법칙’과 주점의 엄밀한 계산이 부딪친 결과, 30대는 부킹의 세계에서 아웃당했다.

박수진 기자 한겨레 디지털뉴스부 jin21@hani.co.kr



부킹의 노하우가 궁금하다고?
존재를 각인시키고 허세를 부려라
ㅂ주점 고아무개 전무
조명을 최대한 이용하라. ㅂ주점은 음식 접시가 모두 흰색이다. 파란 조명이 흰 접시에 반사돼 다시 얼굴을 비추는 조명 구실을 한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괴고 조명을 얼굴에 한껏 반사시키면 예뻐 보인다.
강향아(23·가명)씨
홀 방식의 부킹주점은 테이블 위치에 따라 눈에 안 띄는 경우가 많다. 많이 돌아다니며 존재를 각인시키면 부킹은 반드시 들어온다.
박주아(22·가명)씨
많이 웃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한다. 여자가 먼저 부킹을 시도하면 백이면 백 성공한다. 남자들은 웬만해선 부킹을 거절하지 않는다.
박기범(22)씨
갖고 있는 명품 옷이나 좋은 옷 등을 입고 간다. 최대한 가진 것을 드러내며 허세를 부린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