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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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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심야식당>의 ‘고양이 맘마’

세 가지 재료, 수십 가지 맛
등록 2011-11-18 15:29 수정 2020-05-03 04:26

당분간이긴 하지만, 식구가 하나 늘었다. 요즘 온 마음이 이 아이에게 쏠려 있다. 시인 황인숙의 1984년 데뷔작에 나오는 것만 같은 아이다. “이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만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중)
황인숙의 시에서처럼 얼룩무늬는 아니지만, 윤기가 잘잘 흐르는 까만 길고양이가 이런저런 이유로 집으로 굴러 들어와 2주째 머물고 있다. 이름은 ‘귤’(하도 반질거려서 ‘챔기름’ 등 몇 개의 후보가 있었지만, 눈이 호박 보석알처럼 노랗게 빛나서 그리 부르기로 했다).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그래서 오늘은 아베 야로의 에 나오는 ‘고양이 맘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지난번 하루 지난 카레 이야기를 하며 을 들먹이긴 했지만(862호 ‘취하지 않은 척하는 자의 해장’ 참조), 2008년부터 시작돼 7권까지 발간된 이 만화의 인기는 여전히 꾸준하므로 다시 한번 우려먹어보자. 고양이 맘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치도리 미유키라는 3류 엔카 가수다. “인생은 되는 대로, 되는 대로,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되어도 되는 대로, 오솔길 찾아 꼬불꼬불 가는 것이 너무 좋아”라고 노래하고 늦은 밤 퇴근하는 그는, 식당에 들를 때면 꼭 고양이 맘마를 시킨다. 따끈한 밥 위에 가쓰오부시를 얹고 거기에 간장을 한 큰술 둘러 비벼먹는다. 우리로 치면 간장, 참기름, 달걀에 밥을 비벼먹는 차림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심야식당> 갈무리

드라마 <심야식당> 갈무리

간단한 재료로 만드는 음식일수록 매번 맛이 같을 수 없다. 고양이 맘마 맛을 결정짓는 요인은 세 가지 재료 모두에 달렸다. 밥이 얼마나 따끈하고 고슬고슬한가, 간장은 군내가 나지 않고 깨끗한가, 가쓰오부시의 풍미가 짙은가. 재료 상태가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다 보면 같은 고양이 맘마지만 그 맛은 수십 개의 스펙트럼으로 쪼개지겠지.

고양이 맘마는 만화에서처럼 주로 가쓰오부시와 간장의 조합이지만, 각 지역에 따라 국을 얹는 경우도 있단다. 유래가 고양이처럼 우아하거나 아름다운 건 아니다. 고양이 밥값을 아끼려고 간단하고 편하게 잔반을 처리하는 데서 시작했는데, 맛이 좋아 인간의 식탁에도 오르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런 추측도 조심스레 해본다. 고양이 맘마라 불리는 까닭은 고양이의 100만 가지 성격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재료 상태에 따라 그 맛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고양이 맘마처럼 고양이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성격, 다정하고 애교 있으면서도 때로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구석을 제 매력으로 내세우니까.

그런 면에서 귤은 그저께까지는 내내, 내가 자면 침대 밑에, 책상에 앉으면 의자 밑에, TV를 보면 함께 시청,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앞 발닦개 앞에 앉아 대기, 로션을 바르면 화장대 밑에 와서 껌딱지처럼 굴며 애교를 부리더니, 어제부터는 (주중에 갑자기 나타난) ‘주말에 만나는 남자’에게 착 달라붙어서는 나는 모른 척이다. 너 그런 식으로 굴면 맘마 없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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