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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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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굿바이를 고하는 사람들

사적 네트위크에서 공공의 매체가 된 트위터, 소통 신화에 균열 생겨… 연대 혹은 적대의 다수결주의는 양날의 칼
등록 2011-11-18 02:52 수정 2020-05-02 19:26
» 일러스트 김대중

» 일러스트 김대중

태초에 인터넷이 있었다. 그러고는 구글이, 그 뒤에 트위터가 창조되었다. 트위터의 소통 구조를 알아보려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제작 및 분석 업체인 MSA파크사의 이승경 기획실장과 통화했다. 트위터 분석사들의 현황을 듣는 짧은 통화였다. 통화가 끝나고 이승경 기획실장이 돌연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전자우편에서 이 실장은 내 이름 석 자와 매체 이름만 가지고 전자우편 주소와 트위터 아이디는 물론 내가 회사 10분 거리에 산다는 것, 최근에 취재원과 트윗을 주고받은 내용, 언제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어떤 부서를 거쳤는지를 파악했노라고 말했다. 구글 사이트 검색과 트위터로 이 모든 정보를 알아내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노라고 했다. 인터넷 잠행 15년 만에 이렇게 신상이 털려보기는 처음이었다.

트위터를 하고 있는 누리꾼

트위터를 하고 있는 누리꾼

가장 빠르고 뜨거운

트위터는 실존하는 개인들의 네트워크다.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는 대부분 실명이나 가상 인격을 걸고 당당히 의견을 피력한다. 왜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는 위험을 무릅쓰며 트위터를 할까?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는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 특히 독점적 정보를 과시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짝짓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하는데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그러기에 좋은 최고의 멍석”이라고 풀이한다. 트위터가 본래 지닌 장점 중 하나가 현실에서는 접근하지 못하는 유명인들과 개인 대 개인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좋은 정보와 통찰력 있는 멘션을 제공하면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이를 ‘트위터의 무연고주의’라고 부른다. 연고지상주의인 한국 사회에서 트위터가 급속도로 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도 한몫했다. 지난 11월10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날 트위터는 뜨겁게 지저귀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착륙”(@filmakeryu), “김진숙 지도를 통해 희망이 우리 곁에 걸어다닌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다”(@duddus)던 감격의 하루가 지날 무렵, 사수대 3명이 그날 유치장으로 향한다는 소식과 쌍용차 해고노동자 부인의 죽음이 알려지자 타임라인은 분노로 뒤덮였다. 아직 어떤 매체도 연행이나 사망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던 시점에 트위터는 이미 ‘정리해고 사회 대한민국’에 대한 총체적 논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트위터 한국 사용자 500만 명 시대에 트위터는 사적 의사소통이 얽혀 공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소통 매체다.

특히 트위터를 통해 판세를 미리 점칠 수 있었던 지난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트위터는 진보 진영의 사상과 이슈를 전파하는 진보적 네트워크로 여겨진다. 당선 윤곽이 나오자 모든 신문에서 트위터 멘션과 팔로어 분석이 이어졌다. 올해 초 이집트 혁명이 일어나자 세계의 수많은 신문에서 어떻게 소셜미디어가 혁명의 귀환을 촉발했는지 논하는 글이 넘쳐났던 것과 비슷하다. 장덕진 교수는 “중동, 우리나라, 중국처럼 대체로 오프라인의 정부가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정치 현실을 지닌 나라에서 소셜네트워크는 전복적 가치와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트위터는 99% 절대다수가 지닌 열망의 확성기이자 세상을 바꿀 새로운 연대의 출발점일까?

소통과 토론이 부재하는 지저귐

그런데 트위터가 만들어낸 ‘소통 신화’에 작은 균열이 보인다. 지난 11월3일 인권활동가 엄기호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작별의 말을 남겼다. “저는 SNS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멋진 매체지요. 그러나 제가 있어야 하는 곳은 그걸로 바뀌지 않고 무관한 삶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실시간으로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겉절이도 맛이 좋지만 저는 묵은지가 좋습니다. 그래서 이제 트윗을 닫습니다. 변화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곳으로 돌아가렵니다. 거기가 제 자리더군요. 모두의 건투를!” 무슨 사연일까? 엄기호씨의 최근 트윗으로 짐작해보면 트위터에서 오가는 격렬한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사생활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것과 사적인 것을 정치화하는 것은 명확히 구분되고 구분되어야 한다”는 질타는 ‘나꼼수’(나는 꼼수다)의 ‘이명박 대통령과 에리카김의 부적절한 관계’ 폭로를 향한 것으로 보인다. “FTA가 FTA지 이 FTA는 저 FTA가 아니라는 말로 비정하고 비겁하게 꼬리 자르기를 하다니. …당신들이 할 일은 ‘반성’이지 ‘변명’이 아니다”라는 멘션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임론을 둘러싼 논쟁과 연관지을 수 있다.

문제는 트위터에서 이견이 어떻게 처리되고 소통되는지다. 트위터의 다수결주의는 진보 진영에 강점이자 약점이 될지 모른다. 같은 비판을 했던 진보 논객 진중권씨의 트위터는 연일 다른 사용자들의 힐난으로 타임라인이 들끓었다. 그보다 앞서 팔로어 1만 명을 넘겼던 한 소설가는 트위터 활동을 중단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이 소설가는 “서로의 생각을 묻는 멘션을 하기보단 우르르 진보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가는 “지금 트위터에서 진보적 지향을 전제로 하며 다양한 이견을 포괄할 수 있는 소통과 토론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트위터가 아니라 진보 진영 전체에 해당되는 물음일지 모른다. 사회평론가 박권일씨는 한 사이트에 연재하는 ‘표준 시민’이란 글에서 지금의 국면을 “이명박과 한나라당이라는 절대악과 동지(우리 편)를 구분하는 적대의 정치”라고 표현했는데, 트위터상에서는 ‘적대의 정치’가 140자로 좀더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숨가쁘게 올라가는 멘션들은 결국 이미 오프라인에서 계급적으로 합의된 내용을 트위터로 재연할 뿐인 것 아닐까. 트위터는 새로운 내용을 생산하는 매체가 아니라 현실의 담론을 복제하는 것에 가깝다”고 했다.

소소한 소통으로 진보하는 SNS의 꿈은?

외국에서는 소셜네트워크가 변혁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반대 사례도 적잖은 탓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희정 조사관은 “유럽에서는 극우단체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젊은 층을 조직한다”며 지난 여름 영국 폭동 때 영국수호동맹이라는 극우단체가 트위터로 테러와 폭력의 방법과 이념을 전파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윌리엄 데이비도우는 단행본 에서 인종적·이성애적 편향을 지닌 미국인들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인종차별주의자로 극단화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집단지성이 튼튼하지 못하다면 트위터의 다수결 논리는 언제든지 진보를 겨눌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조희정 조사관은 “정치적 급변기에 집단행동과 의제폭발의 촉매 기능을 하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매개 정치에 주목한다. 혁명의 조건이 아니더라도 혁명 가속화의 조건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위터로 만난 김진숙 지도위원과 배우 김여진의 관계가 오프라인보다 더 뜨겁고 절절했던 것처럼 소통의 길은 아직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열려 있다.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연대를 이루리라는 기대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현실 정치와 닮은 트위터 소통 방식

주고 받거나 제 할 말만 하거나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지금의 화두는 단연 소통이다. 우리는 140자 소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분석가들은 멘션과 팔로어의 수로 영향력을 재는 파워트위터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MSA파크 이승경 기획실장은 “그 트위터를 구독하는 팔로어는 마음만 먹는다면 2천~3천 명까지 인위적으로도 늘릴 수 있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부탁을 받고 팔로어를 늘려주는 회사도 있다. 한 달에 1만 명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팔로어 수는 허구”라고 말했다. 게다가 대다수 사람들은 유명인이라면, 멘션이 많다면 일단 팔로잉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느냐는 별개 문제라는 것이다.

왜 한국의 보수 논객은 트위터에서 열세일까? 트위터 활동 숫자만 보면 한나라당이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 인터넷 매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는 트위터 사용자 중 가장 많이 퍼뜨려진 메시지의 주인공은 조국 서울대 교수로 재전송 횟수가 3만5천 번에 이른다. 대표적 나경원 후보 지지자인 강재천 민보상법개정추진본부장의 멘션은 7500번 재전송됐다. 문제는 숫자가 아닐 수 있다. 이승경 실장은 대다수 보수 인사들이 자신의 멘션을 말할 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응하지 않는, 일방적 소통 방식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위터상에서 ‘좌파’는 대체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응하고, ‘우파’는 자신의 할 말만 한다는 것이다. 트위터에 올리는 멘션의 유형을 분석하는 사이트인 트위터랜드닷컴(http://twtrland.com)에서 분석해보니 그 차이는 분명했다. 강재천 본부장(그래픽1)은 자기 주장을 올리는 플레인 멘션의 비율이 48.7%로 가장 높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답하는 멘션은 11.6%로 낮았다. 이에 비해 조국 교수(그래픽2)는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대답이 47.7%로 가장 높고, 자신의 주장은 17.8%였다. 대표적 보수 논객인 조갑제씨(그래픽3)는 자기 주장이 47.3%, 리트윗 27.7%이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답글은 아예 찾아 볼 수 없었다(11월11일 기준).

물론 이런 소통 방식의 차이가 반드시 진보·보수 구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트위터 공간의 한국 정치’라는 논문에서 트위터 활동 상위 정치인들의 활동 방식을 분석한 일이 있다. 이 논문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팔로어 수로는 1위지만 본인은 141명밖에 팔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트위터상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별로 듣지 않는 편이라고 풀이한다. 이런 트위터 사용 유형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반면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팔로어와 팔로잉 수가 비슷하다. 게다가 그의 말은 답글이 달리거나 재전송되는 비율도 높은 편이다.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재전송하는 비율이 높은 편인데, 장 교수는 트위터 소통과 관계맺기에서 이 점에 특히 주목한다. “유명 정치인이 내 말을 받아주었을 때의 놀라움과 친밀감이 지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확고한 지지층과 교감하려고 소통하는 유시민·박근혜 유형, 대중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노회찬 전 대표, 최재천 전 의원의 차이만큼 정치인들의 트위터 소통은 다르다. 현실 정치와도 닮은 구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참고 문헌 ‘트위터 공간의 한국 정치’, 장덕진, 48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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