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잘한 일 하나가 치질수술이다. 치질을 수술하고 나니 인생이 바뀌었다. 이렇게 편한 것을 왜 진작에 안 했을까 후회했지만, 솔직히 그전까지 수술이 너무 무서웠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곳에 칼 댈 걸 생각하면 절로 오금이 저렸다. 더구나 수술 뒤 큰일은 어떻게 보노? 아프고 불편하지만 차라리 이대로 사는 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한다. 치질은 빨리 수술할수록 그만큼 이익이라고. 입대 신고식으로 한 달 넘게 술만 마시다가 밑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훈련소에 들어갔으니 어땠겠는가. 그러고도 30여 년을 더 버텼으니 이런 한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2004년 초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수술했으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리라.
어찌됐든 치질수술 뒤 난 비데가 없는 데서는 큰일을 보지 못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일을 본 다음 뒤가 청결치 않으면 치질이 또 재발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세상에 비데가 있는 화장실이 얼마나 되는지. 한동안 나는 우리 집 밖에서는 큰일을 보지 못해 애먹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물티슈다. 물티슈가 비데만은 못해도 대용품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후 물티슈는 나의 ‘머스트 해브’가 됐다. 휴대용 비데인 물티슈를 늘 바지 뒷주머니에 꼽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된 것이다. 급할 때 손수건은 못 챙겨도 물티슈만큼은 꼭 챙긴다.
물티슈는 의외로 쓸모가 많다. 음식을 먹기 전후와, 세수를 미처 못했을 때나 땀을 많이 흘려 얼굴이 찝찝할 때 이만한 게 없다. 특히 여성과 있을 때 물티슈를 꺼내면 매우 깔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물론 속사정을 알고 나면 그 반대겠지만. 참고로 좋은 물티슈는 소독제를 첨가해 항균 효과도 있다. 이 정도면 물티슈협회에서 홍보비를 줄 만한데….
물티슈가 내 수(手)중의 머스트 해브라면 내 차(車)중의 머스트 해브는 나의 음악 앨범이다. 알다시피 나는 앨범을 4집까지 낸 무명 중견가수다. 불쌍하게도 나는 히트곡을 하나라도 남겨야겠다는 꿈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뭔가 선물을 주려 할 때면 대부분 내 앨범을 준다. 여기저기 초청받은 행사에 가면 되도록 재미없는 축사 대신 축가를 부르는 편이다. 언제 어디서 축가를 부를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반주(MR)가 든 앨범을 준비해야 한다. 사람들은 “축사 대신 축가로 할까요?” 하면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때마다 내 노래 을 부른다. 은 그 제목이나 가사가 축가로 부르기에 딱이다. 심지어 결혼식에 가서도 부른 적이 있다. 내 노래는 언제나 히트하려나. 아마 나 죽고 나면 불쌍해서 반짝 히트할지 모르겠다.
정두언 국회의원·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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