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도 지나고 태풍도 한 번 지나갔고,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어요. 더위는 타지 않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 허약(!) 체질인 저에게 여름은 종종 곤혹스러운 계절이에요. 열심히 걸어서 버스에 올라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주체할 수 없이 땀이 흐르거든요. 그럴 땐 좀 부끄러워요.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청결해 보이지 않기도 하잖아요.
아아~ 이런 청결 강박, 좀 깨야 하는데요. 왜냐고요? 우리가 보송보송한 몸 상태를 유지하려면 전기를 쓰고, 땀으로 시큼해진 몸을 씻으려고 물을 쓰잖아요.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강박처럼 되면 땀이 나지 않도록 늘 에어컨을 켜놓고, 땀이 조금만 나도 몸을 씻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화석연료도 많이 쓰고 물도 많이 쓰니까 지구에 더 폐를 끼치는 거잖아요.
뭐 이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좀 덜 불결해 보이고 싶고, 제 스스로도 상쾌하게 다니고 싶어서 여름에 꼭 갖고 다니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있어요. 하나는 땀을 닦을 수 있는 손수건이고, 또 하나는 땀을 시원하게 말려줄 부채예요. 땀이 줄줄 흘러도 손수건으로 스윽 닦고 부채로 활활 날려버리면 제아무리 찜통더위라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좋아하던 시절, 음력 5월5일 단옷날에 부채를 드리곤 했어요.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인 단오에 더위를 물리치라고 부채를 주고받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거든요. 저는 그 마음이 참 좋았어요. 그해의 여름을 시원하게, 무탈하게, 쾌적하게 잘 보내라는 상대를 아끼는 그 마음. 소박하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좋았어요. 그래서 저도 실천해보았죠. 다양한 부채가 많은 서울 인사동에 가서, 갖고 다니기 편한 손바닥만 한 둥글부채, 집에 두고 쓰기 좋은 커다란 둥글부채를 사서 사랑을 담아 선물하기도 했답니다.
지난해에는 저도 멋진 부채를 선물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보라색에 나비까지 그려진 접부채예요. 손목에 힘을 주어 촤르륵 펼치면 소리만으로도 시원해지는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런 부채요. 게다가 귀여운 매듭이 달려 있어서 사랑스럽기까지 한 보관주머니까지! ‘완전 소중’한 아이템이죠. 지난 희망버스 여정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답니다.
부채와 손수건이 있다면 선풍기 없이도, 에어컨의 희망온도를 26℃로 해도 여름이 두렵지 않답니다. 지니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부채와 손수건으로 지구온난화도 염려하는 그런 개념 찬 멋쟁이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내년 단오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채를 선물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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