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소맥 독재국’이다. 국세청에서 2010년 술 출고량을 조사해보니 맥주와 소주의 시장 비중이 77%다. 최근 막걸리 유행에 힘입어 막걸리 점유율이 12%를 차지했다지만 1990년대 막걸리가 11%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20년 걸려 돌고 돌아 제자리인 셈이다. 배상면주가 배영호 사장은 “수천 개 양조장이 수만 가지 술을 만드는 와인이나 사케는 종의 다양성이 살아 있는 반면, 우리 음주 생태계에는 그런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획일화된 술상은 주객들을 그저 취하려고 마시는 사람쯤으로 타락시켰다. 문화와 소비가 이상적으로 결합할 수도 있었던 술자리는 천편일률 같은 모양으로 빚어진 술잔들 속에서 시큼한 소비의 냄새를 풍긴다.
빚을 때마다 다른 맛 내는 나만의 술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7월26일 우리 술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수수보리아카데미’를 찾았다. 밤이 되자 누룩곰팡이와 효모를 분간하고 직접 발효하고 간수하느라 ‘술 시중’이 고되지만 스스로 만드는 술맛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모였다. 충북 제천에서 매주 올라온다는 김은숙씨는 지난해 담근 단호박을 넣은 술을 가져와서 돌렸다. 호박과 쌀, 누룩으로 밑술을 만들어 덧술을 더하는 일은 물론, 증류도 직접 했다. 시중의 다른 술과 비교하기 어려운 깨끗하고 강한 단맛을 지닌 술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사업을 하며 취미로 우리 술을 만든다는 임동민씨는 담백한 커피막걸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중의 커피막걸리는 에스프레소 원액을 막걸리에 섞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커피맛도 막걸리맛도 아닌 맹탕이 돼버리기 십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임동민씨는 발효가 거의 끝나갈 때 베 보자기에 커피콩을 싸서 넣었더니 커피맛이 어우러진 막걸리가 나온 것은 물론, 원두콩을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신맛과 단맛을 다채롭게 주조해낼 수 있더라는 발견도 회원들과 나눴다. 국세청 기술연구소에서 일하는 틈틈이 등 여러 권의 술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조호철씨는 “대량생산하는 술은 품질이 균질하지만 개성 있는 맛이 안 나온다. 반면 자신이 담그면 같은 술을 100번씩 만들어도 같은 맛은 나오지 않는다. 나만의 술을 맛보는 재미는 상품화된 술을 마시는 일과는 비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술 다양성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전통주에 빠지는 것은 필연이다. 우리 술이야말로 본원부터 다양성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순당연구소 신우창 소장은 “조선시대까지는 양조장이 없고 집에서 담그는 술이 대부분인 실정이라 집안마다 다양한 주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름만 전해져 내려오는 조주법이 600여 가지, 만드는 법이 전해져오는 술은 300여 가지”라고 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아예 우리 술은 어림잡아 46만 종은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리 쌀 품종만도 10종에 누룩은 50가지다. 가공 방법은 크게 8가지로 나뉜다. 같은 술도 쌀마다 다른 맛을 전한다. 여기에 계절마다 술에 60여 가지 꽃을 띄우거나 72가지 한약재를 조합해서 넣어왔단다.
옥수수엿술, 갈대주, 감귤주, 냉이술
좁쌀만 한 전통주 시장이라지만, 우리 술이 지닌 부재료와 조주법의 다양성 덕분에 전통주는 변신무쌍 늘어난다. 3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충북 구병아름마을에는 30가지 이상의 술이 넘친다. 6월에 살구가 열리면 따서 술을 담가 12월에 먹는다. 7월에 보리수가 익으면 술로 빚어낸다. 계절별로 한약재나 솔방울, 마가목, 대추가 나올 때도 술을 담근다. 이 마을에 사는 무형문화재 전통주 전수자 임경순씨는 송로주를 담근다. 옥수수엿술이나 동동주는 넉넉히 담가 외지인들과도 나눠먹는다.
지역성도 전통주를 늘려가는 데 한몫한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술이 된다”는 말은 “특산품은 모두 술이 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전남 순천시는 순천만에서 자란 갈대순 2%를 넣은 ‘순천 갈대주’를 내놓았다. 청주맛과 비슷한 맑고 깔끔한 맛인데 쌉쌀한 갈대향을 덧입었다. 배상면주가는 지역 양조장인 ‘느린마을 양조장’ 및 지자체와 합세해 증류주 ‘아락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전남 나주의 배, 경남 하동의 녹차, 충북 단양의 마늘, 경북 청송의 사과, 전북 완주의 감 아락 등이 이렇게 태어난 술이다. 경남 의령 ‘조씨 술도가’에서는 지역 특산물이 된 구아버 잎을 이용해 구아버주를 빚는다.
물론 쉽게 그럴듯한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제주의 특산품인 감귤주는 여러 양조장이 시도했지만 상업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번번이 좌절해왔다. 감귤주 ‘귤한잔’을 만드는 한백 제주공장의 강동협 공장장은 “시장도 좁지만 감귤이 발효하면서 특유의 냄새가 많이 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더라”고 했다. 강 공장장은 5년 동안 감귤 100t을 고스란히 버렸단다. 감귤 나무를 건조하고 태우고 오크통에 넣는 별별 방법을 쓰기도 했다. 수백 번 실험을 거쳐 효모에서 해답을 찾았다. 지난해 감귤주는 한·중·일 제주 정상회의 만찬장에 올랐다. 실험정신은 전통주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필살기다. 강동협 공장장은 요즘엔 한라산 자생식물인 조릿대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나마 조릿대가 지천이라 원료비가 많이 들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배상면주가 배영호 사장은 냉이술을 한번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 만들 방법을 찾았다. 연구원들이 모두 나서서 냉이를 캐다가 술을 담갔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동네 아주머니가 맛을 보고는 일갈했다. “이건 참냉이가 아니잖아!” 그 뒤론 이른 봄 꽃피기 전에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참냉이를 캐와서 술을 빚는다. 해남 냉이는 뿌리에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아 술이 로제와인처럼 분홍빛을 띤다. 탈 많고 사연 많던 냉이술은 지금은 여름 매실미주, 가을 들국화술, 겨울 도소주와 함께 제철 재료로 빚는 세시주로 자리잡았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샴페인 막걸리를 내놓았다. 샴페인처럼 축포로 터뜨릴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연구원들이 자청해서 막걸리를 뒤집어썼다. 펑펑 잘 터지고 냄새나 얼룩은 남지 않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술이 더 위험하다”
별별 우리 술을 들여다보노라면 이들을 과연 전통주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수수보리아카데미 조효진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사랑한 술이 전통주가 아닐까. 지금 사람들은 개성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하지 예전 레시피를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영호 사장은 “똑같은 것이 더 위험하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똑같은 회사의 똑같은 일본식 누룩 가지고 정부에서 싸게 사들인 쌀에다 아스파탐 집어넣어 전국이 똑같은 막걸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막걸리 열풍의 실체다”라고 말한다. 그는 ‘느린마을 양조장’ 13곳에서 서로 다른 막걸리를 빚는 꿈을 꾸고 있다. “이젠 별별 막걸리가 나와야 돼. 를 보면 조선엔 수도 없이 다양한 막걸리가 많았거든. 그래야 생태계지.” 재료만이 문제가 아니다. 박록담 소장은 “잘 빚은 술은 쌀과 누룩만으로도 수십 가지 다양한 향을 낼 수 있다”며 술의 기본기를 강조했다.
어떤 술이 좋은 술일까. 답은 다양하다.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 여수환 박사는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좋은 원료와 유용 양조미생물로 고도의 양조기술을 사용해 소비자 취향에 맞는 술을 빚어야 좋은 술”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배상면주가는 8도 쌀로 빚은 8가지 막걸리를 두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도 자기 고장 쌀로 만든 막걸리가 가장 맛있다고 답했다. “별별 술을 찾다보면 술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별별 술의 진실이다. 신비한 재료가 아니라 감성이 들어가 있는 것이 좋은 술이다.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풍류주라고 불렀다.” 다양한 술을 찾는 길의 끝에 배영호 사장이 일러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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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고두밥, 누룩, 물
1. 쌀과 물은 같은 양으로 넣고 누룩은 10분의 1 정도를 넣어 3가지 재료를 잘 버무린다.
2. 항아리나 유리병에 넣고 면 보자기를 두른 뒤 20~23℃ 되는 곳에서 발효한다. 발효 중 1~2일 정도는 하루에 한 번씩 저어준다.
3. 7일 뒤 술이 다 되면 걸러서 바로 먹을 수도 있고, 시간을 두어 맑은 술을 떠낼 수도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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