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프다는 전갈을 받았다. 평소 육식남의 전형을 보여준 그였다. 돼지 ‘돈’에 히틀러의 ‘틀러’를 합쳐 ‘돈틀러’라 불린 사나이.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지난 주말, 동창 녀석과 서울 구로의 한 대학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와잎도 함께. 물론 부부동반은 아니었다. 와잎의 오지랖 넓은 성정과 친화력은 친구들이 나보다 내 와잎을 더 찾게 만들었다(고 와잎은 믿는 듯했다).
녀석은 모로 누워 있었다. 돌부처처럼. 병명은 전문용어로 헤모로이드(hemorrhoid). 치질이었다. ‘짐승’이 짐승을 먹어 걸린 병이었다. 와잎은 반가움을 듬뿍 담아 “가지가지 하는구먼”이라고 인사했다. 수척해진 그의 앞에서 우리는 수치질이냐, 암치질이냐, 치루냐, 치핵이냐를 두고 전문가적 식견을 주고받았다. 암치질이면 자웅동체가 되는 것 아니냐는 같은 병력 소유자의 의학적 소견에 우리는 허준 이후 최고의 명의가 나왔다며 경탄했다. 그렇게 우리는 풀이라곤 연초밖에 모르는 주인을 만나 뿔(?)난 그의 괄약근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의 똥꼬 깊숙이 무허가 침을 시술했던 유년 시절의 야매 의료행위를 가슴 깊이 반성했다. 학문을 갈고닦을 일 없으니 항문이라도 잘 갈고닦으라는 쾌유의 메시지를 남긴 채, 우리는 서둘러 병실을 나섰다. 녀석은 목발을 짚고 우리를 배웅했다.
친구 녀석은 괜찮은 곰탕집이 있다며 근처의 나주곰탕집으로 이끌었다. 당분간 ‘짐승’을 멀리할 짐승을 대신해 우리라도 먹어줘야 한다며 우리는 부지런히 따라갔다. 일요일 저녁에도 손님이 제법 많았다. 와잎은 앉자마자 수육과 소맥을 주문했다. 짐승은 너였어. 자잘한 국물 위로 여러 부위의 고기가 나왔다. 육질은 부들부들했고, 맛은 고소했다. 치질환자 마주하고 난 뒤 먹는 수육이라니. 입맛이 절로 돌았다. 짐승은 나였어.
와잎은 소맥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배려라며 1:1 비율의 10부10부 소맥을 연방 건넸다. 이런 배려 필요치 않아! 하도 너랑 술 먹어서 뚱땡이에 얼굴 코주부 됐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2차 가자고 할까봐 꾹 참았다. 친구 녀석은 “술 잘 먹는 와잎 만나서 얼마나 좋으냐”며 “부럽기까지 하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고 막말하는구먼. 와잎이 주는 술 먹고 치질 도져야 정신 차리겠구나.
와잎과 친구 녀석이 슬슬 발동이 걸리는 것에 경악하며 우선 속이라도 채워야겠다는 요량에 곰탕을 주문했다. 다른 집의 곰탕과 달리 이곳은 국물이 멀겠다. 맛은 심심했다. 웅숭깊은 나주곰탕의 맛이었다. 이윽고 국물에 밥을 마는데, 전화가 왔다. 돈틀러였다. 어디냐는 거였다. 곰탕이 먹고 싶은 눈치였다. “곰탕이 먹고 싶냐? 이 곰탱아~ 넌 당분간 마늘만 먹어야 사람 되(돼)지”라고 말해주었는데, 피 끓는 짐승의 식탐에 마음이 짠했다. 냄비에 라면 끓여 먹어도 자기가 먹을 거 덜어놓고 냄비에 있는 거 먼저 먹는 놈이 아니던가. 한 그릇 사다주마 약속한 뒤 전화를 끊었는데, 얼씨구~ 옆을 보니 와잎과 친구 녀석이 러브샷을 하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었다. 좋으니? 술 먹으니까 그렇게 좋으니?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먼. 난 국물에 만 밥을 욱여넣었다.
주신이 강림한 와잎과 친구 녀석은 2차를 외쳤다. “내 이번 생을 포기하고만 싶다”고 와잎에게 나직이 말했다. 와잎 왈, “그냥 나를 포기해. 그게 빨라”. 집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 술자리는 월요일 새벽에나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휴대전화가 없어졌다. 내 휴대전화를 챙겼다고 한 것은 와잎이었다. 와잎은 떡실신해 있었다. 월요일 아침, 분실한 휴대전화를 생각하며 난 쾌재를 불렀다. ‘사당동 프리덤’이었다. 아싸, 해방이구나~. 다만 며칠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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