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결혼한 김도연(31)씨는 지금도 결혼식을 떠올리면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결혼식장 앞에 놓인 큰 액자 속에는 도연씨가 신랑 인우씨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직접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었고, 포토 테이블 위에는 둘이 함께 구입한 소품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넣은 작은 액자와 앨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례 없는 예식으로 진행된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적은 편지글과 시아버지의 덕담으로 따뜻했다. 따로 마련한 드레스를 입은 들러리 친구들이 곁을 지켜주었고, 결혼식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춤과 노래를 연습했던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축가를 불렀다.
“그 어떤 화려한 결혼식장도 부럽지 않았어요. 결혼식장에 제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거든요. 결혼식이 끝나고 주변 분들로부터 ‘지금까지 봤던 결혼식 중 가장 아름다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나하나 준비하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뻤죠.”
스튜디오보다 저렴한 셀프 촬영 여행도연씨는 지난해 4월 결혼 날짜를 잡고 나서부터 결혼식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하는 것처럼 스튜디오 웨딩 촬영을 할 생각이었다. 사진 촬영 업체와 계약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스튜디오 웨딩 촬영은 재미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직접 촬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사진 찍으러 다니는 걸 즐긴 커플이었던 만큼 ‘셀프 웨딩 촬영’이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도연씨는 셀프 웨딩 촬영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드레스나 소품 구입에 관한 정보를 얻는 걸 시작으로 셀프 웨딩 촬영을 준비했다.
미국에서 수입한 15만원짜리 웨딩드레스를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조화 부케와 화환도 샀다. 필요한 액세서리와 코르사주는 직접 만들었다. 집에서 화장을 하고, 머리 모양도 만진 다음 우선 아파트 단지에 있는 뜰로 나갔다. 그렇게 재미 삼아 찍어보다가 집 근처 식물원으로 향했다. 5월이어서 날씨도 딱 좋았다. 촬영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셀프타이머를 맞춰 촬영했다. 여름휴가로 간 펜션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도연씨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예비 신랑인 인우씨는 반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자연스럽게 촬영했다. 뒤늦게 스튜디오 웨딩 촬영을 취소하려고 했지만 위약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촬영해야 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남들과 똑같은 콘셉트로는 찍지 않겠다고 결심한 도연씨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의상을 가져가서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도록 했다.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는 드레스숍에서 대여해 입었다. 도연씨는 어릴 때부터 입고 싶었던 목이 높게 올라오고 레이스로 팔목까지 덮이는 드레스를 골라 포털 사이트의 유명 결혼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는데 반응은 싸늘했다. ‘답답해 보인다’ ‘요즘 누가 그런 드레스를 입느냐’는 댓글도 있었다. 도연씨는 잠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나 고민했지만 자신의 로망이던 그 드레스를 고집했다. 결혼식 당일에는 오히려 “어디서 보던 드레스가 아니어서 독특하고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직접 준비하니까 비용 면에서도 괜찮았어요. 드레스 구입에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면서 예상보다 많이 지출됐지만, 결혼식장에 세워놓은 액자부터 사진 인화까지 1만5천원 내에서 해결했어요. 포토 테이블에 놓은 소품도 저렴하게 구입했어요. 무엇보다 셀프 웨딩 촬영을 할 때는 스튜디오가 어느 곳인지 어느 브랜드의 드레스인지 따져야 할 겉치레가 없었어요. 사진을 찍으며 웃고 떠들며 둘만의 추억을 만들었어요. 또 그 순간을 기록하고 함께 의논하며 결혼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죠.”
거대 결혼산업과 양가 어른 관문 넘어야연인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거대한 ‘결혼산업’에 한 발을 내딛게 된다. 순식간에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의 축약어), ‘예신·예랑’(예비신부·예비신랑의 준말) 등 각종 결혼 관련 용어를 익히게 되고, 조금 더 빠져들면 시내 곳곳의 스튜디오, 미용실, 드레스숍, 한복집, 보석집 이름을 줄줄이 읊게 된다. 포털 사이트의 각종 카페에 가입해 ‘정보 공유’와 ‘질문·답변’에 재미를 붙이면 순식간에 내 결혼과 저 사람의 결혼, 또 다른 사람의 결혼은 똑같은 사진과 드레스, 메이크업, 크게 다르지 않은 결혼식 현장 스냅사진으로 도배된다.
게다가 한국에서 결혼식은 단지 신랑·신부만의 예식이 아니다. 양가 어른들과 친척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랑·신부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보다 자신들의 체면을 더 강조하는 어른들의 가르침과 지침까지 더해지면 결혼식은 더 어려워진다. 처음에 결혼하기로 했던 그 빛나는 순간의 결심이나 바람과는 조금씩 멀어지며 결혼식은 낭만적이기보다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들기며 서로 본전을 맞추려고 치러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관문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며 손놓고 있을 요즘 예신들과 예랑들이 아니다. 최근에는 김도연씨처럼 빈틈없이 돌아가는 결혼산업에서 살짝 몸을 빼고 자기가 바라는 결혼식을 직접 설계하는 부지런한 예비 부부가 늘고 있다.
2009년 스물네 살의 어린 나이에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양지아(26)씨는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모두가 틀에 맞춰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결혼을 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스튜디오 웨딩 촬영은 모두가 똑같은 배경에서 똑같은 포즈로 찍고 보정까지 똑같이 하거든요. 무엇보다 그게 싫었어요. 다행히 남편 될 사람이 사진을 공부해서 우선 스튜디오 웨딩 촬영 대신 기존 사진을 참고해 우리가 직접 찍기로 했어요.” 그때는 셀프 웨딩 촬영과 관련된 정보가 없어서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준비했다. 가까운 곳에 나가서 촬영하다가 촬영을 도와주는 친구와 함께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세 명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 며칠 놀며 촬영을 해도 웬만한 스튜디오 웨딩 촬영 업체에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 돈이 적게 들었다.
지아씨는 셀프 웨딩 촬영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셀프 웨딩 촬영’이라고 정의된 건 없어요. 해변에서 흰 원피스를 입고 꽃만 들고 있어도 멋지거든요. 이걸 촬영이라기보다 여행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결혼 전에, 또 결혼한 다음에 신혼여행을 포함해 적어도 한 번은 둘이 여행을 가잖아요. 그럴 때 조금만 준비하면 쉽게 할 수 있거든요.”
지아씨에 따르면 방법은 제법 간단한다. 5만원 정도면 간편한 드레스를, 2만원 정도면 부케나 액세서리 등을 살 수 있다. 예비신랑 것은 부케나 액세서리와 색상을 맞춘 셔츠, 스니커즈, 보타이 등을 하나 정도만 준비하면 된다. 집에 있는 디지털카메라나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의 타이머 기능을 이용하면 쉽게 할 수 있다. DSLR 카메라의 경우 1만∼2만원의 리모컨을 장만하면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준비해서 약간의 민망함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간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촬영을 할수록 스튜디오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것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지아씨는 촬영한 웨딩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정보도 나누고 싶어서 카페를 개설했다. ‘지아꼬의 셀프웨딩 촬영’(cafe.naver.com/selfweddingphoto)이라는 이름의 카페에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47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지아씨는 셀프 웨딩 촬영에 관한 관심을 실감한다. 촬영을 위해 저렴한 드레스를 파는 온라인숍도 늘었고, 손쉽게 포토북을 만들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펜션 중에서는 드레스 대여까지 서비스하며 셀프 웨딩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곳들도 생겼고, 스튜디오 웨딩 촬영 대신 셀프 웨딩 촬영을 도와주는 웨딩플래너도 있다. “카페 회원들을 보면 실속파인 분이 많아요. 돈을 들여 남들과 똑같이 맞추는 것보다 자기가 준비해서 남다르게 결혼하고 싶은 분이 대부분이죠. 공원이나 회사 잔디밭에서 파티처럼 결혼식을 올리는 분들도 있어요. 점점 더 자기가 꿈꾸고 바라온 결혼식을 실현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웨딩컨설팅업체 ‘라라스타일즈’의 박현선 대표는 “요즘 신랑·신부들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뻔하지 않고 더 재미있는 결혼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과정부터 결과까지 자신들이 직접 의미를 부여하죠. 주례 대신 신랑·신부와 가족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 결혼식이 많아지고, 대형화된 예식홀에서의 예식보다 규모가 작아도 축하받고 싶은 사람들만 초대해 편안하게 예식을 진행하는 하우스웨딩이 늘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박 대표는 판에 박힌 문구 대신 자신들이 원하는 문구를 넣고 디자인해 직접 청첩장을 만들고, 결혼식 뒤 카페나 레스토랑을 빌려 친구들과 저녁 내내 파티처럼 피로연을 하는 경우를 예전보다 자주 본다. “한 결혼식에서는 신랑이 입장부터 퇴장까지 결혼식에서 사용할 음악을 다 골라 왔는데, 신랑이 입장할 때는 세 명의 신랑 들러리와 함께 영화 의 주제가가 흘러나왔어요. 하객 모두가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이었죠.”
부지런하게 둘만의 추억을 채워갈 것이렇듯 결혼식은 조금씩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평생을 약속하는 자리’라는 본연의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생기고 모두의 사랑 이야기가 다 다른 것처럼, 모두의 결혼 이야기도 다 다르다.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은 그날,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게 욕심은 아닐 테다. 단, 그러려면 부지런함은 필수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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