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은 아내는 회복실에 눕자마자 말했다. “이렇게 힘들게 낳았는데 나중에 얼토당토않은 년 데리고 와서 결혼한다고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조심스레 대꾸했다. “그럼 딸 여섯 낳고 아들 본 우리 엄마는 어땠겠느냐?” “죽을래?”
(미안한 말이지만) 와잎은 아기를 잘 낳았다. 마치 낳아본 사람처럼. 와잎이 배를 부여잡고 분만실에 들어간 아침, (나가 있으라는 간호사의 말에) 난 내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막간을 이용해 아침 신호에 응답하기 위함이었다. 힘을 주기도 전에 뭔가가 마구 쏟아졌다. 20여 분쯤 지났을까, 심한 공복감을 느끼며 분만실로 돌아왔는데 간호사가 복도에서 급하게 날 찾았다.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보니 아뿔싸, 아기가 벌써 나와 있었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쏘아붙이는 와잎의 고압 레이저를 피하며 엉겁결에 아들을 받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와잎은 30분도 안 돼 아들을 분만했다. 남편처럼 쏟아지듯. 부창부수가 따로 없었다.
술을 배운 이후로 금주 한 번 한 적 없던 와잎이 임신 기간 중엔 일절 술을 끊었다. 병맥주가 맛없다며 집에다 생통을 설치해 호프를 대놓고 먹자던 그녀가 금주라니. 초록색 위액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정도로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마시는 살신성인이었는데 말이다. 이 대목에서 역시 모성은 대단했다, 라고 쓸 뻔했다. 정확하게 모성 너머의 맥주 사랑이 대단했다고 써야 한다. 수유를 하면서도 와잎은 그동안 너무 참았다며, 비알코올 맥주를 짝으로 대놓고 마셨다. 내가 잔소리를 하자, 말했다. “이게 다 젖이 잘 돌게 하기 위함이야.” 다행히도 비알코올 맥주가 섞인 모유를 먹고도 녀석은 무럭무럭 자랐다. 또래에 비해 발육이 늘 상위 1%를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 (몸에서 당기는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선지해장국, 설렁탕, 곰탕 등 국물을 좋아하는 버릇이 생겼지만.
일요일 저녁, 와잎이 느닷없이 회와 해물이 먹고 싶다 했다. 만날 치킨에 족발을 먹으니 ‘개뚱땡이’ 되겠다며 ‘사시미’ 좀 먹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원전 사고 이후 해산물 소비가 확 줄었다는 기사 생각에 난 꺼림칙했다. 이런 내게 와잎이 던진 한마디. “닥치고 술·담배나 끊으세요~.” 난 속으로만 되뇌었다. ‘어따 대고 술타령이야~.’
서울 관악구 낙성대에서 가격 대비 괜찮은 횟집으로 이름이 났다는 ‘벼락 가우리’를 찾았다. 아담한 실내에 깔끔한 일식 요리주점식 인테리어가 정겨웠다. 아직 손님은 많지 않았다. 모듬회로 주문했다. 와잎은 맥주 두 병에 소주 한 병도 잊지 않았다. (공과금 내는 날이나 잊지 마시지~.) 그나저나 오늘은 일요일인데…. 간 때문이야~! 아니, 너 때문이야~!
이윽고 광어, 우럭, 농어회와 멍게, 해삼, 개불, 전복, 소라 등 해물이 어우러져 나왔다. 밑반찬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한 접시에 부담 없이 회와 해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집의 매력인 듯싶다는 생각을 하며 건너편을 둘러보았는데, 이건 정말 가~관이라고 할밖에. 와잎은 ‘소폭’ 원샷 뒤 회 한 점을 집어 먹으며 “역시 이 맛이야~”를 연발하고 계시고, 아들 녀석은 옆자리 손님들이랑 빈 소주잔을 들고 건배놀이를 하고 있는 ‘조기 몰입교육’의 살뜰한 풍경. 맹모삼천지교가 아니라 아주 ‘맥모’삼천지교구나. 오~ 마이 패밀리여!
간혹 둘째를 낳으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을 때마다 와잎은 말했다. “나보고 다시 금주를 하라고, 그렇게는 못하지.” 남들은 임신을 하라고 한 건데, 와잎은 금주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말은 들었어도 ‘술 못 마시는 게 두려워 아이 못 낳는다’는 말은 처음이라는 표정이었다. 금주가 와잎에게 이처럼 큰 고통(?)임을 알게 된 뒤, 와잎이 술 마시고 주사를 부릴 때마다 외쳤던 말이 있다. 그날도 “여기 소주 한 병 더!”를 외치는 와잎에게 결국 외치고야 말았다. “자꾸 그러면 임신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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