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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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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과 립스틱이 합체하는 순간

미미시스터즈의 깜장 선글라스와 새빨간 립스틱
등록 2011-04-01 11:21 수정 2020-05-03 04:26
입술과 립스틱이 합체하는 순간

입술과 립스틱이 합체하는 순간

안녕? 우린 미미라고 해. 만나서 반갑소. 우리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아마 대부분이 ‘선글라스’ 낀 여자들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소. 감추는 것이 더 궁금증을 일으키는지라 많은 분들이 우리의 진짜 얼굴을 궁금해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재미없을 것이오. 우리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오. 하지만 우리는 몇 가지 아이템으로 변신하고 나면 클라크가 슈퍼맨이 되듯 특별한 힘이 생긴다오.

그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선글라스라고 할 수 있소.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 위로 오르면, 그 순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르며 ‘그럼, 오늘도 어디 한번 놀아볼까?’라는 마음으로 뻔뻔한 표정이 되는 것이오.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소. 광주의 모 라이브 클럽에서 사인회를 하다가 큰 미미의 선글라스 한쪽 알이 빠져버린 것이오. 그것은 눈알 한쪽이 빠져나간 것과 마찬가지 일이라 우리는 무척 당황했소. 하지만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행히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소. 큰 미미는 기지를 발휘해 재빨리 테이블 아래 엎드려 선글라스 알을 끼웠고, 작은 미미는 큰 미미를 가리며 팬들을 자연스레 응대해 위기를 모면하였소. 그 사건 이후로, 큰 미미는 무대 위에 올라갈 때마다 불안해지는 ‘선글라스 알 분리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하오. 어쨋든 ‘미미시스터즈의 선글라스’가 가진 큰 장점은, 관객과 소통하는 매개체라는 점이오. 보통은 얼굴을 가리는 것이 사람들과의 소통을 단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표정이 보이지 않기에 관객은 우리에게 더 집중하고, 우리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한다오.

미미의 또 다른 필수요소로는 새빨간 립스틱을 뽑을 수 있을 것이오. 젊을 땐 지지리도 어울리지 않던 빨간 립스틱이, 어느새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니. 감계무량하기도, 시원섭섭하기도 하오. 각설하고, 미미가 빨간 립스틱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소. 간단하오. 그게 가장 섹시해 보일거라 생각했다오. 결과는? 글쎄, 의견이 분분하오. 미미가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바로 거울 앞에 앉아 입술과 립스틱을 합체시키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소.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내 입술과 내 입술을 붉게 뒤덮는 립스틱밖에 존재하질 않는다오.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 되겠소. 재미있는 건 그날의 립스틱 컨디션에 따라 우리 컨디션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오. 순간의 실수로 입술선 밖을 삐죽 탈선해버리는 일이 있다면, 그날 공연은 어딘가 찜찜하오. 순간의 과욕으로 과도한 양의 립스틱을 덕지덕지 발라버렸다면, 그날 공연은 이빨에 붉은 자욱이 찍힌 굴욕의 사진이 뜨는 날이오. 모든 것이 적당히 어우러지는 날이면, 어쩐지 그날은 음정도 잘 맞고 더 흥이 난다오. 미미쫀닥레드219호, 요게 요즘 미미가 즐겨 바르는 색상이오만, 아쉽게도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들다오. 립스틱 유통에 관심 있는 분은 붕가붕가 레코드로 연락을 주시길.

미미시스터즈

*새 연재 ‘당신의 머스트 해브’는 자신의 각별한 패션 아이템을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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