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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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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의 신화, 치맥의 전설

[KIN]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

추억의 신촌 크리스터치킨
등록 2011-03-25 15:03 수정 2020-05-03 04:26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술집 탐방 칼럼을 연재한다고 했을 때 나온, 와잎의 첫마디였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술 처먹고 밖으로 나다니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혼자 먹겠다는 거냐는 투였다. 술 좋아라 하시는 아내는 남편의 간 건강은 아랑곳없이 자신이 집에서 혼자 술 먹을 생각에 빈정이 상했나 보다. 부부가 함께 술집을 탐방하고 쓰는 칼럼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그래? 그럼 난 술만 먹어주면 되는 거야? 아싸! 그런 건 내가 전문이지~” 한다. 아~, 누구를 위하여 술집 탐방을 하는가. 신난 아내는 예전 추억을 되새길 겸 서울 신촌의 크리스터치킨을 첫 회 탐방지로 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치킨?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 크리스터 치킨 맛은 BBQ치킨과 비슷하지만, 더 바삭한 튀김옷에 더 튼실한 닭이 숨어 있다. 한겨레21 X

» 크리스터 치킨 맛은 BBQ치킨과 비슷하지만, 더 바삭한 튀김옷에 더 튼실한 닭이 숨어 있다. 한겨레21 X

고백건대, 아내와 난 술로 맺어진 관계다. 우리 부부를 만든 건 팔할이 술이었다고 난 말할 수 있다. 연애 때부터 우리는 장강대하와 같은 술을 마셨다. 밥을 먹어도 술, 영화를 봐도 술, 놀러를 가도 술. 모든 데이트의 끝은 술이었다. 우린 신화처럼 마셨다. 미친 듯이. 누가 먼저랄 것이 없었다. 서로를 좋아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는 술을 좋아했다. ‘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술은 큐피드였고, 마음의 버튼이었고, 사랑의 묘약이었다. (망할 놈의.)

그 많은 신화의 시간 가운데 여러 날을 우리는 신촌의 크리스터치킨에 기대 살았다. 그즈음 우리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싸울 때도 크리스터치킨에서 닭을 뜯었다. 치킨을 너무 먹어 이러다 닭 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오던 날들이었다. 2001년 치호치킨으로 개업한 뒤 상호를 크리스터치킨으로 변경한 이 치킨집은 지금은 어엿한 신촌의 맛집이 되었다. ‘BBQ치킨 이전에 크리스터 핫치킨이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맛은 BBQ치킨과 비슷하지만, 더 바삭한 튀김옷에 더 튼실한 닭이 숨어 있다.

지난 3월12일 저녁에 찾은 치킨집은 여전히 ‘치맥’(치킨+생맥주) 마니아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핫치킨 매운맛과 생맥 두 잔! 먼저 양배추와 무절임, 강냉이가 깔린다. 미리 튀겨놓지 않고 주문 뒤 바로 튀겨내기 때문에 치킨이 나오기까지는 생맥 두 잔이 필요하다. 변한 건 없었다. 주전부리 안주가 새우깡에서 강냉이로 바뀌었다는 것 빼고.

와잎은 옛날 생각난다며 생맥주 잔을 들고 짠~ 하잔다. 서서히 긴장이 밀려온다. 사실 대학 새내기 시절 술을 배운 아내는 청소년기 질풍 음주를 했던 나의 주량을 저만치 앞지른다. 여친이 아닌, 아내와 술을 마시기 시작한 뒤 난 어느새 내 주량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연애 시절처럼 둘 다 술에 취해 정신줄을 놓을 수는 없는 까닭에 알아서 적게 마시다 보니 아내와의 주량 격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아내는 아이를 낳은 뒤 새롭게 부활한 것 같다며 평소 멀리하던 소주도 거리낌 없이 마시는 경지에 도달했다.

드디어 치킨이 나왔다. 아내는 치킨이 나왔으니 다시 짠~ 하잔다. 타는 목넘김으로 생맥주를 마시고, 베어문 치킨은 매콤한 맛과 닭고기의 뜨겁고 부드러운 육질로 차졌다. 치맥의 전설답다. 이때 아내가 잔을 들어 외쳤다. 여기 두 잔 더! 아, 오늘도 쉽지 않겠어. ‘판다의 익스트림 라이프’에 빗대 P선배가 지어준 ‘익스트림 와이프’라는 아내 별명이 떠올랐다. 예전 ‘최양락의 도시의 사냥꾼’의 엔딩 멘트도. 에구에구~ 오늘 난 (아내 주사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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