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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가사노동은 어려워~

[KIN] 입만 살아가지고/ 도전, 벨기에식 홍합탕
등록 2011-03-09 17:57 수정 2020-05-03 04:26
벨기에식 홍합탕. 고나무 제공

벨기에식 홍합탕. 고나무 제공

살벌하게 계급이나 외모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사람을 분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동안 나는 ‘이름’으로 사람을 분류해왔다. 나를 소개했을 때 반응은 둘로 나뉜다. “재밌는 이름이군요” 아니면 “예쁜 이름이네요”다. 당연히 내가 폄하하는 부류는 전자다. 한글 이름에 대해 ‘재밌다’고 느끼는 사람은 ‘문화적으로 후진 사람’이라고 딱지 붙여왔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 이름에 대해 “재밌다”고 말한 사람이 좋은 인상을 회복할 확률은 매우 낮거나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징후’에 불과한 것을 두고 사람을 낙인찍는 건 쫀쫀하지 않냐고 항의해도 어쩔 수 없다. 속에 든 것이 당근인지 햄인지 치즈마요네즈인지 한번에 보여주는 ‘김밥의 단면’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분류법이 적어도 ‘혈액형별 궁합’ 따위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고 자신한다. 내 별자리(게자리)와 맞는다는 ‘사자자리 여자’를 만나기보다 ‘아벨 페라라의 영화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여자’나 ‘주말 저녁 갑자기 칸 국제광고제를 가자고 해도 흔쾌히 좋다는 여자’ 혹은 ‘내 이름에 예쁘다라고 말해주는 여자’를 만나는 게 훨씬 어른스러운 일 아니냔 말이다.

아마 요리도 이런 기준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더욱. “요리를 집안일 중에 제일 괜찮게 생각해요. 집안일이라는 것이 요리를 빼면 모두 원위치시키는 노동이잖아요. 유일하게 최초와 달리 새로운 무엇이 나오는 건 요리밖에 없어요.”

벨기에식 홍합탕에 도전한 뒤 이 말에 좀 토를 달고 싶어졌다. 요리는 창조적 노동이지만, 식재료 다듬기는 예외다. 지난주 어느 날 밤, 집 근처 막 철시하려는 시장에서 홍합 1kg을 샀다. 2천원을 건네고 검은 비닐봉지를 받아든 손이 찬바람에 점점 감각을 잃어갔다. 젠장, 이렇게 꽃샘추위가 심한 날엔 역시 훈훈한 겨울 메뉴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식재료 다듬기는 창조적 노동이 아니다. 홍합을 물에 헹구면서 철수세미로 껍질을 한알 한알 박박 씻어야 했다. 하인이 있다면 맡겨버리고 싶은 일.

인터넷에서 조리법을 참고했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홍합은 수세미를 이용해 껍데기를 깨끗이 씻는다 → 양파는 채 썰고 샐러리는 4㎝ 길이로 썬다 → 냄비에 버터를 두르고 홍합을 넣는다 → 화이트 와인을 붓고 양파와 샐러리를 넣어 한소끔 끓인다 →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하고 불에서 내린다.(다음 미즈쿡 참조) 단, 화이트 와인은 단맛이 적고 신맛이 높은 요리용을 넣는 게 좋다.

놀랍도록 단순했고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와인을 좀 과하게 넣어서 신맛이 지나치게 나는 게 흠이었다. 조리법이 너무 단순해서 꽤나 맛있게 한 접시를 비웠는데도 당최 ‘흠, 역시 난 창조적이군’ 따위의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요리는 유일하게 창조적인 가사노동이다. 단, 식재료 다듬기는 예외다. 또 벨기에 홍합탕 정도의 요리를 했다고 창조적 인간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벨기에 홍합탕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로 사귈 여자를 분류하진 마시길.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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