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합법적 표절이다. 조리법은 표절 면허다. 표절을 가르치고, 돕고, 부추긴다. 더욱 좋은 건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이나 영화, 그림, 가요를 표절하면 당장 표절 시비에 시달린다. 그러나 조리법의 원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이데아다. 예술의 표절자는 법으로 처벌되거나 책임을 진다. 법이 아니어도 벌받는다. 아무리 해도 원전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의식이 그것이다. 그러나 요리 표절자는 발랄하다. 죄의식이 없다. 비교당할 원전이 없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 서양 요리다. 동양인이 서양 요리를 만드는데 “본토(원전)의 맛을 낸다”는 문장이 성립할까? 가령 이번에 도전한 카르보나라는 어떤가. 박찬일 요리사는 에서 한국의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의 카르보나라와 다르다고 적었다.
요리를 시작하기 직전 들른 마트에서 두리번거리며 생크림을 찾았다. 그 많던 생크림은 다 누가 먹었을까? “구제역 때문에요, 생크림 없어요, 품절이에요, 눈에 띄면 값 보지 말고 그냥 사세요.” 안경 쓴 점원이 옆에서 심드렁하게 말한다. 생크림을 포기하고 우유와 버터를 샀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생크림도 우유도 필요 없었다. 갈치조림 수준으로 생크림을 담뿍 그릇에 담아주는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는단다. ‘원전 카르보나라’의 맛은 단순하다. 그리고 한국인이 싫어할 정도로 느끼하다(박찬일 요리사가 현지에서 먹은 카르보나라는 멧돼지 고기로 만들었다니 말 다 했다). 생크림은 없고 대신 한국 카르보나라에는 잘 쓰이지 않는 달걀노른자가 들어간다. 버터, 노른자, 베이컨, 후추, 소금, 건파스타가 재료의 전부다.
파스타는 놀랍도록 단순한 음식이다. 한쪽 불에 건파스타를 삶기 시작했다. 오른쪽 가스불에 프라이팬을 달군다. 버터 1작은술을 녹인다. 베이컨을 타지 않게 살짝 굽고 굽자마자 미리 준비한 달걀노른자 2개를 붓는다. 그 위에 파르미자노 치즈를 뿌렸다. 지방(버터)과 단백질(노른자)과 단백질(베이컨)과 단백질(치즈)이 서로 뜨겁게 섞인다. 섹스와 달리, 국물도 없다. 뻑뻑하다. 삶은 파스타를 베이컨과 달걀이 익은 프라이팬에 던져넣었다.
포크로 파스타를 뒤적이자 안에서 달걀과 베이컨과 파스타가 함께 머금었던 열기가 훈김이 되어 훅, 피어올랐다. 겨울에 어울리는 맛이었다. 원전의 맛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웠다. 뜨거운 달걀말이를 파스타에 뒤섞은 맛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원전의 맛이 존재하지 않는 건 서양 요리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박찬일 요리사가 철저히 한국의 재료로 이탈리아 음식을 만드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게다. 요리는 태어나는 순간의 바로 그 요리가 원전이니까.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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