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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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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총총한 아름다운 밤이에요

등록 2010-12-30 16:42 수정 2020-05-03 04:26

<font color="#006699">숱한 패소 판결과 바위 치다 깨진 달걀 파편에도 불구하고 결방 없이 올 한 해를 마무리한 감동을 누구와 나누고 싶으세요?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font>

무엇보다 저희 사장님과 실장님께 감사드려요. 먼저 김주원 사장님. 덕분에 소외되고 가난한 싱글들 마음은 따뜻해졌는데, 백화점 말고 돼지고기 집에서 여대생들한테 성희롱 하는 놈은 한 대 안 때려주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장님들도 내년에는 몽둥이질하고 수표 던지는 대신 진정한 사회 지도층의 윤리를 실현하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도욱 실장님. 아, 기획사 실장님은 아니고요, 선수촌 의무실장님이세요. 사실 엄포스에게 좀 안 어울리는 역할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워낙 드라마 자체의 시선이 곱고 정겨워, 덕분에 민간인 사찰이니 G20이니,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인플루엔자로 받은 상처를 많이 치유받았어요.

시크릿 가든(위)·닥터챔프(아래). SBS제공

시크릿 가든(위)·닥터챔프(아래). SBS제공

또 이렇게 숟가락만 얹으면 되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신 라스페라 서유경씨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지금도 이탈리아 식당에 가면 ‘봉골레’만 시키고, 비슷한 외투까지 샀는데, 보시다시피 제가 입으니까 딱 군밤장수군요.

사랑하는 은조를 빼먹을 수 없지요.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강가에서 울던 그 장면에 대한 기억만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졌던 드라마 자체의 혼란스러움은 다 잊어드릴게요. 연말이라 참살이탁주가 당기는 걸 보면 간접광고의 힘이 크긴 큰데, 제발 내년에는 주인공들이 몰입하는 장면에서 휴대전화 성능을 자랑하는 것만은 참아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 스티브잡스교 신도가 넘친답니다.

스폰서도, 떡값도, 그리고 그랜저가 없이도 얼마든지 좋은 검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마검, 요즈음 법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마검 같은 분을 만나게 될 거란 희망을 가지고 서초동을 지킵니다. 물론 서변 같은 변호사도 같이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요.

우리 잘금 4인방은, 굳이 긴 말 안 해도 제 맘 아시지요? 참, 윤희 아버지, 재주 많은 자식에게 기회를 줄 수 없어 딸자식의 글 읽는 소리에 숨죽여 가슴으로 울 뿐이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속상해도 30만 청년 실업자 마음에 구멍 숭숭 뚫으며 말도 안 되는 특별시험을 만들어 따님을 특채하는 건 안 됩니다.

그리고 제목이 ‘전쟁의 신’이라고 하셨나요? 때가 때인지라 제목이 영 불편하네요. 그렇지만 원래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이라잖아요. 무엇보다 우리 민족을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주먹 자랑은 예산 통과시킬 때 하신 것으로 충분하니 여기선 참으세요. 남들에게는 그렇게 쉬워 보이는 평화가, 우리에게는 한 계단 한 계단 이렇게 힘든 것이니까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아름다운 밤이에요.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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