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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성스’ 문자 랠리 중

등록 2010-09-15 14:26 수정 2020-05-03 04:26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제공

어울리지는 않지만, 연애소설 읽기가 취미였다. 중학교 때는 신간을 몽땅 빌려 돌려 읽는 계를 조직하기도 했다. 할리퀸류의 서양 연애소설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웬만한 책대여점 로맨스 서가의 서양 연애소설 자리를 국내 작가들이 채우면서, 섹시한 그리스 남자가 안 나와서가 아니라 한 번 흐름을 놓치고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이 돼, 취미 목록에서 연애소설을 지워야 했다. 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들이 나왔지만 솔직히 각색이나 감독, 배우들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이라는 소설을, 그것도 동방신기 멤버를 주인공으로 해 이라는 드라마로 만든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남장 여자’라는 설정이 진부했고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를 배경만 민속촌으로 옮겨놓은 억지스러운 ‘퓨전’ 사극은 이제 그만 보고 싶었다. 여주인공 역시 (민영씨, 미안) 이후 호감 갈 일이 없었다. 뭐, 사태 파악을 위해 1·2화 정도는 챙겨보자, 이런 마음으로 TV를 켰다. 그런데! 1회가 끝나자마자 ‘테순’ 동지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야 했다. “성스! 대박!” 똑같은 어투의 답문자가 밀려들었다. “그렇소!!!” “유천 도령, 이제 남자가 되었소.” “에 대한 충성을 단숨에 버리게 만드는구려.” 매주 드라마가 끝나는 밤 11시10분, 문자 랠리는 계속된다. “명대사가 넘쳐 다음 회부터는 필히 수첩 들고 시청.” “영·정조 때 역사책을 찾아봐야겠소.” “원작도 배경과 등장인물이 저렇소? 구성이 엄청 탄탄하오.” 이자들, 추석 연휴 때 단체로 원작을 사 읽을 기세다.

와 의 틈바구니에 끼어 시청률은 잘 모르겠지만 4회를 마친 지금, 이 드라마는 점점 더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안구를 정화해주는 꽃미남들도 물론 좋지만, 재미있다. 원작의 힘인지, 때부터 언뜻언뜻 보이던 작가님 특기인지, 촌철살인 풍자가 좋다. 화면을 휙휙 돌리지 않아 감정을 따라갈 수 있으면서도 늘어지지 않아 쉽게 몰입하게 하는 짜임새가 훌륭하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다. 노회한 대신들의 꾀를 물리치면서 음모를 밝히려는 영리한 임금과 답 대신 질문을 주겠다는 스승 정약용, 겁은 많지만 야무지고 당찬 여주인공 윤희와 아픈 가족사가 있는 이단아 걸오, 그리고 여주인공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매력남 여림. 글재주가 이 모양이라 써놓고 나니 상투적인데 실제 보면 다들 매우 사랑스럽다.

그래도 역시 수훈감은 남주인공이다. 생각보다 눈빛도 목소리도 좋은 배우 박유천의 등장도 은혜롭지만, 좌상 대감의 아들 가랑 이선준의 힘이 더 큰 듯하다. 시험에 척척 붙는 장관 딸, 사장 딸 취직 이야기에 화를 낼 기운도 빠지는 요즈음이라, “그렇게 작고 단순한 원칙이라는 걸 지키려고 하는 내가 잘못이오?”라고 묻는 대사는 유독 울림이 크다. 그래서 제4강 수업 시간, 주제어는 바로 정 박사의 호통이다. “백성들의 고혈로 공부하는 너희들, 제발 밥값 좀 해라.” 밑줄 쫙, 별표 둘.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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