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화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김현승 시인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시인에게 ‘창’이 나에게는 드라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2주에 한 번, 그 창을 열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블로그만 열면 입을 떡 벌리게 만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드라마 평론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글들에 비하면 연방 “엄포스 멋져요! 나는 장항준빠입니다!”를 외치는 글이 얼마나 우스울지, 그럼에도 괜스레 엄숙해 보이는 동네에서 벌어먹는 직업, 오로지 그 이유로 귀한 공간을 선물받은 것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하지만 뻔뻔하게 즐겼고, 그 덕에 드라마 내공이 만만치 않은 여기자님들과 단체관람도 하고, ‘성스’ 김태희 작가님으로부터 감사인사 트윗을 받는 감격스러운 일도 있었다.
간혹 자기 부인이 내 칼럼을 좋아한다는 선배 변호사로부터 호감 어린 인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일은 언제 해? 그걸 다 보니?”라며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오히려 궁금했다. 주식이나 펀드, 최신 스마트폰 정보와 외국 축구선수 이름처럼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이 리모컨 단추만 누르면 바로 나오는데, 왜?
그래도 오해가 있을 고객님(홈페이지 없는 사무실을 찾아오기 위해 내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보는 분)을 위해 영업용 변명 멘트 하나 남긴다면, “일을 앞두고 드라마를 볼 정도로 대범하지는 못하고, 가끔 일이 늦어지는 것은 체체파리에게 물린 듯 시도 때도 없는 잠 때문이랍니다”. 실제 한 시즌에 본방사수하거나 디지털 녹화기로 챙겨보는 건 많아야 2개다. 취향이랄 건 없지만 편식도 꽤 있고 출연자에 대한 선입견도 만만치 않다. 다들 열광하는 나 같은 소문난 명작은 본 적이 없어 명함도 못 내밀었다. 월·화는 ‘김운경 대인’, 수·목은 ‘장항준 옵하’가 든든히 지켜주는 요즘 같은 때는 행복하지만, 대부분 뭘 써야 하나 끙끙대다가 내가 무슨 연예부 기자도 아니고, 이 칼럼이 새 프로그램을 공정하게 소개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내 맘속 명작을 끄집어내 혼자 즐겼다. 그 많은 걸 어디 공책에 써놓은 건 아니고 내 CD장을 채우고 있는 오랜 드라마 OST 컬렉션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도 근 몇 년 OST 중 최고인 양정우 감독님의 OST 앨범 중 웨일 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너무 반가운 를 듣고 있다.
아, 이제 시건방진 잔소리를 멈추고 다시 거울 앞에 돌아온 ‘작가지망생’의 자세로 공모전을 기다려야겠다. 십중팔구 영영 ‘지망생’으로 끝나겠지만, 그 또한 어떤가. 다시 김현승 시인에게 기댄다면, “드라마를 잃으면 세상을 공감하는 바다를 잃고, 드라마는 우리에게 오늘의 뉴스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빛나는 스타들은 십이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드라마를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김진 변호사
*‘김변은 드라마작가 지망생’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