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어른들에게 참 많이 속았다. 하고 싶은 일을 꾹 참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을 가고, 그러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들 했지만, 더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외려 가장 좋은 것은 열여섯, 바로 그때였다.
더 어릴 때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책 속 이야기는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는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원래는 무섭거나 잔혹하거나 심각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 있다. 그림책은 이렇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얼굴이 똑같은 거지의 아들과 왕자가, 재미 삼아 옷을 바꿔 입고 서로의 처지를 바꿔 각자 여러 모험을 하지만, 결국 자기 자리를 찾고 친구처럼 행복하게 잘 산다는 동화. 하지만 실제 19세기 말 마크 트웨인이 북구 전설을 토대로 쓴 원래의 이야기는, 에드워드 6세가 왕이 되는 과정과 당시 민중의 삶을 그리면서 동시에 권력의 실상을 드러내고 비꼬는, 심각한 사회풍자 소설이었다.
새 드라마 가 이 우화의 틀을 빌린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자체가 차고 넘치게 재미난 이 설정은, 이미 숱한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변주돼왔다. 그렇지만 (단지 2회를 지났을 뿐이지만) 가 안이하게 그 공식에 기댈 것이라는 예상은 잠시 유보해둬도 될 것 같다. 바로 이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놓는 사람이, 살 냄새 나는 사람 이야기의 절대강자 김운경 작가이기 때문이다.
먼저 아기가 바뀌는 이유를 보면 이렇다. 의 은서와 신애처럼 병원에서 우연히 그런 것도 아니요, 의 톰과 에드워드처럼 재미 삼아 스스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바로 어른(천둥의 어미인 막순)의 욕망(이걸 ‘모성애’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들어간 곳은 선량한 부모가 모든 것을 해주는 행복한 스위트 홈이 아니라 매관매직을 서슴지 않는 세도가 집안이다. 이런 장치들에 백정이나 사냥꾼 마을, 거지 소굴의 사연 많은 인물들이 촘촘히 더해지고 나니, 이제 흥미진진한 바탕화면은 다 갖춘 셈이다. 여기에 작가가 전작 과 에서 팍팍한 서울 하늘 아래 사람 사는 냄새를 에 구수히 끓여냈던 것처럼,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조선 말 민초들의 ‘힘든 살아남기’를 제대로 그려내기만 한다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던 이 이야기는 팔딱거리는 생기를 얻게 될 것이다. 동시에 더 이상 한 개인의 ‘기구한 운명’ 이야기에 머무르지도 않을 것이다.
어쩜 그때 우리는 심각하게 되묻고 있을지 모르겠다. “저게 과연 천둥의 운명인 거야, 귀동의 운명인 거야? 아님, 대체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고 그 둘의 운명이 바뀌기는 한 걸까?” 마크 트웨인의 에서, 시간이 갈수록 에드워드 자신도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렸듯이 말이다.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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