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소식을 들은 건, 커피 가게 사장님을 대신해 법정 화해를 하러 서울 구의동 법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전화하시고 나도 잠시 솔깃했다. 법원에서는 빌린 돈을 갚으라며, 이제는 더 이상 못 살겠으니 이혼하자며 싸우는 사람들의 고성이, 지하철에서는 혹자는 졸고 몇몇은 심각한 고민 중이었으며 목소리 큰 아저씨의 전화 통화도, 모두 그대로였다. 저녁에는 예정돼 있던 강연을 갔고, 무려 뒤풀이를 했으며, 맥줏집 텔레비전에서는 축구 중계가 나오는 가운데 우리는 데프콘과 진돗개 하나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울산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열흘째 농성 중이고, 공개된 108쪽 수첩에는 일백여덟 가지 번뇌보다 더 겁나는 권력이 맨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모두의 ‘일상’이 그대로이니, “연평도 피격 기사로 레드 섹션 없어져 원고 마감은 일주일 연기”라는 전화!… 가 올 리 없다. 외국 사는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너무 태평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당신네 친척들과는 달리 전쟁이 걱정된다고 해서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11월23일 당일 조필연(드라마 의 악역)의 죽음을 지켜보는 마음은, 어쩌면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도 사과나무 심는 심정으로 원고료 값을 해야 할 텐데, 종영한 에 대한 회고에도, 속 혜수 언니 열연에도 몰입이 안 된다. 이럴 때 코미디 각본을 써야 하는 작가도 있겠지… 라며 위안을 하려는데, 몇 년 전 열광했던 미국 드라마 이 생각난다. 같은 ‘스케치 코미디 쇼’(Sketch Comedy Show)를 제작하는 작가와 감독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매주 웃기는 풍자극을 생방송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9·11 테러와 아프간 전쟁이 일어난다. 코미디 방송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철없이 웃길 수만도 없어 주인공인 작가는 큰 고민에 빠진다. 아랍인 에피소드나 죽음 같은 부분은 자체 편집해 보류시키는데,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테러와 전쟁을 빌미로 강화되는 애국주의와 방송 내용에 대한 정부의 통제다. 백악관 비서관 발언을 비꼬는 ‘스킷’(프로그램 한 꼭지)이 비판을 받는다. 사과를 하자는 선배 PD와 젊은 후배들이 갈등하다 결국 후배 스태프는 방송을 떠난다(그렇게 떠난 후배 스태프들이 돌아와 쇼를 재건한다는 짜잔 스토리).
나중에는 아프간 전쟁 인질을 구해내는 미군의 활약이 독수리 오형제처럼 그려져 ‘으악’ 했고, 보기 민망한 미국식 사회드라마의 요소도 많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면 이럴 때 할 말이라도 있겠으나, 심지어 보도사진을 ‘뽀샵’으로 더 무섭고 진하게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지금 같은 때 그런 절제와 풍자를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 아니 이건, 엉뚱하게 만 자꾸 떠오르고, 오백룡·오진우·허정숙 같은 북의 고위 인사들 이름까지 기억나 생각이 더는 진전되지 않는 동부전선 산골 반공소녀 출신의 비겁한 변명이다.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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