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홀어머니의 아들이 “이번에도 올 백”을 맞았다며 시험지를 들고 엄마에게 달려온다. 그 20년 뒤 모습은? 사법연수원을 놀라운 성적으로 졸업한 변호사다. P&K·대서양과 같은 유수 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만 거절하고, 어느 비밀스런 사무실로 영입되는데, 면접비로 1억원에, 큰 차와 아파트는 기본.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니 이 젊은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더럽거나 위험하거나().
고시촌에서 식당을 하는 고졸의 딸이 월급을 아껴 고시생 남자친구 보철값까지 대고 그 어머니는 ‘귀한 우리 사위’를 위해 비싼 양복값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다음 장면은? 사법시험에 붙은 남자는 부잣집 여자와 선을 보고, 옛 여자에게 이별을 선언. 시련은 주인공을 단련시키는 법이니 우리의 여자 주인공은 훨씬 더 멋진 남자를 만나거나 보란 듯이 성공을 하거나().
지겹다 해야 할지 일관성에 감탄해야 할지 알 수 없으나, 2000하고도 11년이 지난 이때, 매 순간 정확하게 예상한 장면과 줄거리가 곧바로 튀어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다른 이야기나 등장인물도 마찬가지겠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라 그런지 변호사나 판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특히나 더 그래 보인다. 어쩌면 “네가 회장님 집안일 같은 걸 못 맡아봐서 그런다. 화려한 맞선 시장에 명함 한 번 못 내밀어봐서 그런다”고 하겠지만, 너무나 현실성 없어 보이는 저런 일들은, 드라마가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인상과 이미지는 거꾸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건 아닐까. ‘빽’의 대표명사 격인 ‘아는 검사’만 있으면 있던 일도 없던 일이 되지 않느냐는 생각, 논리적 사고와 현란한 말솜씨가 최고라는 생각, 대박 인생역전의 상징인 사법시험에 붙었으니 일정한 수입과 지위는 보장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대형 로펌에 영입되어야 법률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생각…. 법률가 사위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까지는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법률가를 만나는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법적인 문제에 부딪힌 사람들이 그렇다면, 좀 심각해진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결국 ‘법’에 대한 인상이고 이미지일 텐데, 누가 그런 사람들이 다루는 법이 공정한 것이라 믿을 수 있겠는가.
한발 더 나아가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법률가가 되려는 사람들, 심지어 법률가 본인들에 이르면, 결코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게 된다.
우습고 상투적인데다 심하게 자주 등장하며, 현실과 많이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동시에 묘하게 현실을 반영하면서 사람들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드라마 속 법률가들이, 나는 그래서 조금 불편하다.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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